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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금’을 찾아서 신안 증도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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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손이 마를 날 없는 아낙네들은 조용히 “이맘때”라고 합니다. 정답입니다. 소금을 가장 많이 쓰는 때는 음력 정월이지요. 오래 두고 먹을 장을 담그는 철이기 때문입니다. 예부터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겨우내 띄운 메주로 장을 담가왔습니다. ‘장은 정월장이 최고’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지요.

좋은 소금은 손으로 쥐면 쉽게 부서진다. 품질이 시원찮은 소금은 뒤끝이 쓰다.

‘음식 맛은 장맛’이란 말이 있지요? ‘장이 달면 복이 든다’는 말도 있고요. 간장이랑 된장의 맛이 좋아야 음식 맛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죠. 그래야 맛있게 잘 먹고, 건강하게 일해 많은 것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이치가 숨어 있는 말입니다.

장을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는 메주·소금·물 세 가지뿐입니다. 잘 띄운 메주, 맑은 물, 특히 맛 좋은 소금이 장맛을 결정하지요. 요 몇 년 사이 장을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주부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앞서 담근 김장도 제 맛이 아니라고 겨우내 울상을 짓던 사람들입니다. 소금 때문입니다. 같은 소금으로 김장을 하고, 장을 담갔기 때문이죠. 중국산 저질 소금이 넘쳐나면서 식탁의 보물단지인 김치랑 장맛을 망쳐 놓은 거지요.

이런 사실을 살림 경력 10년을 훌쩍 넘기고야 깨달았다는 김은숙(39·서울 양평동) 주부. 몇 년 전까지는 ‘시어머니표’ 간장·된장과 김장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소금이 귀중한지 몰랐다네요. 올해는 장 담그기에 앞서 질 좋은 소금부터 구하기로 했습니다. 이달 초 자동차를 몰고 남쪽으로 향하는 김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김씨가 5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은 전남 신안군 증도면의 태평염전. 오후가 돼서야 증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습니다. 섬에 내려 보니 바둑판 모양으로 개펄을 다져서 만든 염전이 하늘과 맞닿아 끝이 보이지 않더군요. 140만 평, 단일염전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답니다. 염전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가둬 놓은 바닷물도, 하얀 소금도 한 줌 없이 차가운 바람만 불었습니다.

“소금은 4월 중순부터 만들기 시작해 10월에 끝납니다. 그렇다고 지금 염전이 쉬고 있는 건 아닙니다. 바닥 펄 속의 미네랄이나 미생물들은 다음 소금 생산을 준비하며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거든요.” 태평염전 조재우 상무의 설명입니다.

간간이 눈발이 날리는데도 인부들의 손길은 바빴습니다. 단단한 염전 바닥 펄을 삽으로 얇게 떠 뒤집기도 하고, 바닷물이 빨리 증발할 수 있도록 물길을 고치기도 합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에 가둬 햇볕과 바람으로 건조시켜 만듭니다. 그렇다고 한 곳에서 계속 증발시키는 건 아니에요. 증발 상태별로 3단계로 나눠 관리하죠. 1차 증발지에서 염도를 높인 뒤 2차 증발지로 옮겨 염도를 더 올리고, 마지막 단계인 결정지로 보내죠.” 안 상무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바닷물이 천일염으로 되는 데 15일가량 걸린답니다. 그러나 도중에 비라도 내리면 도로아미타불. 그럴 땐 가둬놓아 염도가 높아진 바닷물을 염전 중간의 임시 저수지로 옮겼다가 비가 그친 뒤 다시 증발시킨다네요.

“그럼 한여름에 만든 소금이 가장 좋겠네요?” 김씨가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안 상무의 답이 단호합니다. “한여름엔 오히려 증발이 더디거든요. 유월에 만든 소금이 최고지요.” 이때가 햇볕은 강하지 않지만 바람이 살살 불어 증발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겁니다. 게다가 소금밭에 송홧가루가 날아와 맛과 향을 더 좋게 한다는군요.

“그럼, 꽃소금이란 건 뭔가요”

“소금이 만들어질 때는 물 표면에 얇은 소금막이 형성된 뒤 조금씩 커지면서 결정체가 돼요. 이것이 품질이 뛰어난 꽃소금이죠. 점점 무거워지면 아래로 가라앉아 굵은 소금이 되는 거고요.”

“좋은 소금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손으로 쥐었을 때 쉽게 부서져야 좋은 거예요. 단단하고 잘 부서지지 않는 것은 중국산이거나 국산이라고 해도 초봄이나 가을에 만들어 품질이 떨어지는 거죠. 이런 소금을 먹어보면 단맛 대신 쓴맛이 뒤끝에 남아요.”

“소금은 미리 사두라고 하던데….”

“그렇죠. 소금은 미리 사서 간수를 빼야 해요. 묵혀두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 좋지 않은 성분과 간수를 내놓거든요. 음식점 주인들이 소금을 많이 사놓고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 뒤로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김씨는 천일염 다섯 포대(30㎏·1만2000원씩)를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신안)글=유지상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우리 음식점만의 소금 관리 요령

맛동산 오동원 사장 매년 5월이면 서해안 염전에서 천일염을 4t 트럭 한 차씩 구입한다. 1년치 물량인데 바로 쓰지 않고 창고에 1년 동안 묵혔다가 사용한다. 이때 쓴맛이 나는 간수가 빠진다. 소금은 대부분 김치와 어리굴젓을 담는 데 쓰인다. 짠맛이 덜한 우리집 청국장은 이 소금을 따로 볶아서 쓰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서산 간월도, 굴솥밥 전문점)

손만두집 박혜경 사장 만둣국 등을 끓일 때 직접 담근 간장을 쓰기 때문에 소금의 질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렇다고 직접 소금을 구입하진 않는다. 믿고 받아쓰는 중개상이 있어서다. 그곳에선 국내 최고급 소금을 구입해 간수까지 빼서 공급해 준다. 1년에 두 차례, 장 담글 때(2월)와 김장철(11월)에 100~120포(30㎏/포)를 사서 평상시 배추김치 담글 때도 쓴다.(서울 부암동, 손만두 전문점)

스시효 안효주 사장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만든 천일염은 일본 사람들도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하다. 펄이 좋아 미네랄 맛이 풍성하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소금을 3년 이상 간수를 빼서 쓴다. 간장 대신 소금으로 간을 맞춰 내는 아나고초밥이랑 성게초밥은 이 소금을 따로 볶아서 쓴다. 소금에 수분이 없어야 입안에서 뽀송뽀송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 청담동, 초밥 전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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