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나의 아버지 김순남" 김세원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아버지가 뭘 하시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할말을 잃었어요.아버지는 40년동안 내 가슴에 박힌 못으로 녹슬어 갔어요.그 세월의 깊이 때문에 월북예술인 해금조치는 기쁨보다 두려움이었어요.
』 월북음악가 김순남의 유일한 혈육인 성우 김세원(金世媛.50)씨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나선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나의 아버지 김순남』(나남)은 김씨가 88년5월부터 94년12월까지 아버지의 발자취를 좇아 러시아.중국.일본등지 로 10만여리를 헤매며 들은 사실과 치밀어오르는 감정들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책.
『산유화』의 작곡자인 김순남은 서양음악과 국악을 접목시켜 우리의 정서에 맞는 현대적 기법을 구사한 민족음악가로 48년 『인민항쟁가』를 작곡한뒤 수배령이 내려지자 월북했으나,53년 숙청당한 이후 힘든 생활을 하다 82년께 사망한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씨는 국민학교 2학년때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나누는 얘기를 엿듣고 처음으로 아버지의 월북사실을 알게 됐다.그러나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김씨는 『어린 나이에 비밀을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여행중 아버지의 체취가 짙게 배어 있는 곳일수록 슬픔도 컸다고 한다.아버지가 차이코프스키음악원 연구원으로 있을 때매일 저녁 음악을 듣던 자리에 앉았을 때와 러시아 화가에게 35세때의 아버지 사진을 주며 40대의 자신과 나 란히 그려달라고 했을 때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번 여행기간중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찾은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다.그러나 「실리」도 있었다.하버드대 도서관과 美 국회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관현악곡』 『바이올린 독주곡』악보를 찾아냈고,미군정 당시 문화고문으로 와 있던 네바다주 리노대학의 헤이모 위츠교수로부터 아버지가 헌정했던 우리나라최초의 피아노협주곡 악보도 받았다.
김씨는 『책을 쓰는 5년간 어머니는 혼자서 한을 곰삭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전한다.그는 또 비슷한 상처를 가진 월북자 가족들에게 그의 책이 조그마한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南再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