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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들 "삼성전자 배우자" 벤치마킹 경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경제계에 삼성전자 배우기 바람이 거세다.

▶삼성 일본 현지법인인 일본삼성이 도쿄(東京)도심인 롯폰기(六本木)에 준공한 최첨단 사옥 '롯폰기 T-큐브'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간 세계 전자업체 가운데 최고의 영업이익율을 기록했다.지난해 역시 매출 43조5800억원,영업이익 7조1900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율에서 일본 전자업체들을 모두 제쳤다.

이에 따라 일본 경쟁업체들은 삼성전자 톱 경영층의 리더십과 한발 앞선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해 벤치마킹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의 기업인들은 지난해 11월 도쿄 중심가인 롯폰기(六本木)에 입주한 27층 짜리 삼성재팬 본사를 바라 보며 선망과 질시의 눈초리를 함께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이건희(李健熙) 회장 주도 아래 푸랑크푸르트 선언 등 착실한 준비경영을 해왔다.10년이 지난 이제서야 결실을 맺은 것이다.

유명 증권사의 한 산업담당 애널리스트는 "소니.마쯔시타.산요 등 일본 주요 전자업체들은 매주 임원회의에서 삼성전자의 경영스타일에 대해 보고를 받고 벤치마킹에 열심"이라고 귀끔한다.

◇삼성전자 배우기=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인 산요(三洋電機)는 지난해 임원.부장급 30여명을 한국 삼성그룹 본사로 보냈다.이들은 삼성의 조직관리와 성과급 위주의 인사체계를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산요는 현재 휴대폰.노트북에 쓰이는 2차전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삼성전자.삼성SDI를 가장 무서운 경쟁상대로 꼽고 있다.수년 이내 삼성과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는 셈이다.그래서 삼성전자의 기술 동향 뿐 아니라 성과급과 발탁 위주의 인사시스템 등도 면밀하게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이다.

파나소닉.내셔날 브랜드를 갖고 있는 마쯔시타(松下)전기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앞서가고 있는 대형 초박막액정장치(TFT-LCD)의 경우 매주 정보보고를 받고 있다.특히 삼성 톱 경영층의 움직임은 주요 보고 대상이다.아울러 성과급제와 40대 초반의 임원 발탁 등도 벤치마킹해 일부 사업부에 도입했다.

일본 경제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일본에 방문할때면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라며 "특히 李회장이 2002년부터 주장한 핵심인재 채용을 일본 기업인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업체만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아니다.

나고야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삼성전자의 상품개발 능력 보다는 삼성그룹이 투자하는 사업 성격에 대해서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며 "한국 언론이 소개한 삼성 톱 경영층의 말과 인사시스템은 수년전 부터 관찰해왔다"고 전했다.

이같은 삼성전자의 약진 덕분에 올해 일본 진출 50주년을 맞는 삼성재팬은 일본 직장인들 사이에 선망의 기업으로 올라섰다.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취업전문지 '타입(Type)'이 지난해 5월 일본 직장인 2887명을 대상으로 '전직하고 싶은 기업'을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삼성재팬이 전체 50위 가운데 43위에 올랐다.1위는 소니가 차지했고 뒤를 이어 도요타자동차.일본IBM.마쓰시타.캐논.혼다 등이 6위까지 랭크됐다.

타입은 삼성재팬에 대해 "일본에서 최초로 40인치 TFT-LCD TV를 출시하는 등 마이크로소프트(MS) 다음으로 세계적인 하이테크 기업"이라고 소개했다.이 잡지는 또 "한국의 삼성이 일본 진출 50주년만에 50위권에 진입했다"며 "향후 일본의 IT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 조사는 일본의 일반 직장인(문과계열 59%, 이공계열 41%, 평균연령 32.5세)을 대상으로 기업의 경영비전.상품개발력.장래성.영업력.급여수준.인재육성.사내문화 등을 온라인으로 조사했다.

유력 전자관련 전문지인 '니께이(日經)일렉트로닉스'도 지난해 초 일본의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연구개발분야에서 주목할만 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가 1위에 올랐다.2위는 소니,3위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삼성재팬 신사옥

◇삼성 분석하는 일본=일본의 경제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약진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그중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 것은 李회장의 리더십과 의사 결정 프로세스 두가지다.삼성의 오너 체계와 여기에 걸맞는 응집력 있는 최고경영자,그리고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조절하는 비서실(현 구조조정본부)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IMF 경제위기때 보여준 삼성의 위기 대응 능력도 높게 평가한다.삼성전자가 외환위기 직전 李회장의 결단으로 2조원 규모의 초박막액정장치(TFT-LCD)에 선투자를 한 것이 오늘날의 실적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메모리 12인치 라인 1조2,000억원 및 7세대 LCD라인에 2조7,000천억원의 투자를 결정하는 등 지난해 보다 무려 18%나 많은 7조9,200억원의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이는 전 세계 IT 기업중 최고 수준이다.지속적인 시설투자에도 8조원대의 현금을 보유하고 순차입비율 -23%와 자기자본이익율(ROE) 26% 등을 기록하고 있다.

나고야대학 국제개발대학원 조두섭(曺斗燮.국제경영) 교수는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들은 자국에서 찾아 보기 어려운 삼성의 오너 경영(책임 경영)과 이에 따른 빠른 의사 결정,적기 투자를 벤치마킹 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일본 기업들은 중요한 투자를 놓고 의사결정이 더디고 책임 경영이 어려운데다 최근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계는 삼성전자가 IT 업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이어간 것은 반도체.통신.디지털미디어.가전 등 각 부문이 3대3대3대1 비율을 구성한 사업구조가 큰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한 부문이 어려울 경우 다른 부문이 상쇄하는 황금 분할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 삼성의 성과급제도 사업 성공의 동인으로 꼽고 있다.연공 서열 위주의 일본 기업과 달리 '일할 수 있는 동인'이 확실하다는 것이다.2002년 삼성은 소속 직원 5만3천명에게 평균 7백만원 꼴인 특별상여금 3천7백50억원을 지급했다.

◇잘 나갈때 조심하자=일본의 대표 기업인 소니와 마쓰시타전기 후지쓰.도시바.NEC 등 업체들은 13년째 냉랭하게 얼어붙고 있는 내수침체로 심각한 수익성 위기를 겪고 있다.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해 3월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도시바.후지쓰.NEC에 대해 신용등급을 한단계씩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전자업체 1등의 자존심 소니는 지난해 1분기 가전 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1,111억엔(1조2,000억원)의 손실을 내기도 했다.

특히 소니는 '삼성전자에 추월당한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이때문에 소니 직원들은 삼성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 그 많은 일본기업 중 왜 하필이면 소니와 비교하느냐며 아예 언급을 회피한다.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소니 회장이 주재하는 경영회의에서는 삼성의 수익구조를 놓고 사업전략을 논의하는 일도 잦아졌다.지난해엔 삼성전자와 공동 투자를 하며 파트너쉽도 강화했다.두 회사의 연간 거래규모는 삼성은 소니에 반도체를, 소니는 삼성에 CD기술을 제공하며 1조엔에 달한다.

삼성재팬은 '잘 나갈때 조심하자'며 소니.마츠시타 등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경쓰고 있다.

삼성재팬 관계자는 "소니와 삼성은 경쟁관계라기보다는 협력관계"라며 "일본 주요 전자업체들이 삼성을 배우기 보다는 이제서야 대등한 관계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도쿄,서울=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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