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아프리카서 희망 찾기’ ② 에티오피아 빈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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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일곱 가족 32명이 10m2 남짓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린이재단 제공]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우리는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솔로몬을 방문했던 시바 여왕의 나라,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 주었던 동맹국, 한때는 그 나라가 우리보다 훨씬 더 선진국이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하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수도 아디스아바바 일부를 제외하고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었다. 가뭄 때문은 아니었다. 베고 심지 않으니 그리 된 것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내게 어린이재단 김석산 회장이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공항에서 차로 옮겨 타자마자 실감이 났다. 한낮, 한길 거리, 가로수보다 많은 사람이 담요에 몸을 둘둘 만 채로 길거리에 누워 있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그도 아니면 젊은 남자 여럿이 그냥, 길거리에서 차도를 향한 채 멍하니 우르르 앉아 있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도 가장 열악한 지역인 메르카토로 이동했다. 우리로 치면 서울의 남대문 시장 정도의 위치,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가진 곳으로 시장과 주거가 혼합된 지역이었다.

글쎄, 이제 나는 그곳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 광경을 내가 몇 개의 글자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처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독한 냄새였다. 그것은 발밑에 쌓인 쓰레기들이 썩어 가는 냄새, 건기였기에 장화는 필요 없었지만 발밑이 두꺼운 솜을 밟는 듯 푹신거렸고 그럴 때마다 새롭고 독한 메탄가스가 코밑으로 수직으로 올라왔다.

걷기도 힘들었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 아이들이 메탄가스에 중독되어 자주 쓰러진다고 했다. 그 쓰레기길 위에서 사람들은 먹고 팔고 배설하고 그리고 산 닭의 껍질을 기술적으로 동그랗게 벗기고 있었다.

그래도 그곳은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 주거지역은 훨씬 더 심각했다. 화장실과 수도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거적과 누더기와 판자로 이어진 집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에티오피아 CCF(Chritian Child Fund) 스태프가 나를 안내한 곳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10㎡(3평)쯤 되는 공간, 일곱 가족 32명이 살고 있었다. 각 가족의 구획은 작은 매트리스가 대신하고 있었다. 근친상간, 소녀 임신, 질병, 기아 등등이 모두 이런 곳에서 일어난다는 통계가 떠올랐다.

내가 들어서니 모두 구걸을 나가고 한 가족만 남아 있었다. 몹시 늙어 보이는 여자가 한 노인의 곁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이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심한 기근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지난해 이 도시로 왔다고 했다. 여자는 실은 20대 중반, 그 곁의 노인은 젊은 그녀의 남편으로 눈이 멀어 있었다. 그들의 곁에 놓인 유일한 식기는 작은 비닐 봉지. 우리들이 보았다면 음식물 쓰레기로 여겼을 그 비닐봉지가 그들의 하나뿐인 밥상이었다.

왜! 라는 절규가 신에 대한 불신으로 번개처럼 나를 내리쳤다. 여인의 품에서 빈 젖을 빨고 있던 아이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나는 순간 믿을 수 없었다. 언어는 알 수 없었지만 여자가 애타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애원했다. 도와주세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검고 앙상한 얼굴에서도 같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간다에서도 그랬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만 빼고 다 주고 싶었다. 이 가족 하나 돕는다고 뭐가 어떻게 될 것도 아니지만,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홍보대사인 내게 개인적 원조는 금지되어 있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고, 밖으로 나와 어린이재단의 김석산 회장을 붙들고 울었다. 돈을 주고 가게 해달라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조금만 눈감아 준다면 내 지갑 속에 든 달러를 다 주고 싶다고, 어떻게 그냥 저 사람들을 두고 가느냐고…. 카메라를 든 스태프도 함께 울었다. 김 회장도 그리고 우리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걸 힘들어 하는 에티오피아 스태프도 그랬다.

골목길에서 우리를 구경하러 나온 맨발의 아이들만 검고 맑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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