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존슨 잠실서 기아와 친선戰 "이것이 NBA농구"실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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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매일 아침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이상한 반점이라도 생기지 않았는지 살펴본다.어쩌다 체중이 1㎏만 줄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매직 존슨(36)이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감염으로 NBA코트를 떠난지 3년.혼자 있을 때면 죽음의 공포가 그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의 마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신(神)이 농구를 위해 파견한 사자(使者) 존슨은 10일 국내실업농구 최강팀 기아자동차와의 친선경기에서 그의 복음을 장중하고도 신명나게 한국농구팬들 앞에 펼쳐 보였다.
센터로 뛰어도 좋을 2m6㎝의 신장으로 코트 구석구석을 내려다보며 갈색의 볼을 애무해 프리즘이 자연광을 머금어 오색의 광선을 빚어내듯 믿을수 없는 바스켓의 파노라마를 연출해내는 코트의 제왕.
1959년 8월14일 미시간州의 랜싱에서 어빙 존슨이라는 이름의 흑인 소년이 탄생하는 순간 농구의 역사는 새로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슨은 애버리트 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77년 어느 농구기자가붙인 닉네임으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지방지 랜싱 스테이트 저널의 기자 프레드 스태블리 2세는 州챔피언전에 출전한 존슨의 플레이를 관전하고 경악하게 된다.
36점.18리바운드.1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우승시킨 존슨에게 반한 스태블리 2세는 『15세의 소년 존슨은 코트에서 마술과도 같은 플레이를 펼쳐보인다』며 처음으로 존슨의 이름 앞에 「매직」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존슨의 마술은 강력했다.그가 몸담은 팀은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므로.
미시간주립大에 재학중이던 존슨이 79년 미국대학체육위원회(NCAA)농구 챔피언타이틀을 놓고 인디애나大의 래리 버드와 벌인한판은 전설적인 명승부로 기억되고 있다.
이 경기에서 24점을 넣은 존슨의 활약으로 미시간주립대는 75-64로 승리,우승했다.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존슨은 샴페인세례를 받으며 NBA진출을 선언했고,1순위 지명권을 얻은 LA레이커스는 19세의 청년과 연봉 60만달러에 4년계약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스카우트 계약을 체결했다.
존슨은 79년 10월12일 샌디에이고 클리퍼스(LA클리퍼스의전신)와의 데뷔전에서 26득점 했고 레이커스는 1백3-1백2로승리했다.
데뷔무대인 79-80시즌 MVP는 래리 버드에게 돌아갔다.그러나 존슨은 풀레이오프에서 맹활약,레이커스를 우승으로 이끌며 플레이오프 MVP에 올랐다.
특히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의 활약은 농구팬들의 머릿속에 영원히 남을 인상을 아로새겼다.
5차전에서 발목부상한 기둥센터 카림 압둘 자바 대신 센터로 출전한 존슨은 42득점.1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세븐티식서스의 파워 ■어 대릴 더킨스를 KO시킨것이다.
존슨은 87,89,90년 MVP를 거머쥐었고 레이커스에 몸담고있던 12시즌동안 소속팀에 다섯차례(80.82.85.87.88년)챔피언타이틀을 안겨주었다.
91년11월7일 HIV감염사실을 밝히고 은퇴를 선언,진정한 용기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그를 미국농구팬들은 92년 올스타전에불러냈고 존슨은 또한번의 마술로 올스타 MVP에 올랐다.
그리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존슨의 마술은 완성에 도달한다.
미국농구의 희망과 자존심을 짊어진 드림팀의 리더로 출전,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가장 성스러운 무대에서 가장높은 자리에 올라설수 있었던 것이다.
NCAA와 NBA 우승,올림픽 금메달,돈과 명예를 모두 손에쥔 마술사의 다음번 꿈은 에이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것이다.
그러나 존슨은 "농구를 위해 살고 농구를 통해 진정한 꿈과 용기와 사랑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는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허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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