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사령탑 '얄궂은 인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동상이몽(同床異夢) 속의 동병상련(同病相憐).

아테네올림픽 티켓 잡기 레이스에 나선 한국 축구 올림픽대표팀 김호곤(53.사진(左))감독과 중국 선샹푸(47.사진(右))감독의 처지가 그렇다. 26년 전 경기장에서 처음 만난 두 감독의 인연이 3일 한.중전을 시작으로 갈림길에 섰다. 누가 최후에 웃을 것인가. 아니면 제3의 팀에 티켓을 넘겨주고 둘 다 패자가 될 것인가.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준결승리그. 한국과 중국 대표팀이 사상 처음 국제 무대에서 만났다.

당시 한국팀 주장은 김호곤이었다. 선샹푸는 대표팀에 갓 들어간 새내기였다. 결과는 한국의 승리. 차범근(현 수원 삼성 감독)의 결승골로 한국이 1-0으로 이겼다. 그 뒤 한국은 중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무패(15승10무)의 기록을 이어왔다. 김호곤과 선샹푸의 첫 만남이 중국 축구 '공한증(恐韓症)'의 출발점인 셈이었다.

선샹푸 감독은 1일 한국에 도착한 뒤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 공한증은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지도자로서 '좌절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각오다. 반면 김감독은 중국전 절대우세의 전통을 잇고, 5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라는 과제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양국과 이란.말레이시아가 속한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아테네행 티켓은 단 한 장뿐이다.

두 감독의 입지는 공교롭게도 흡사한 면이 많다. 둘 다 '2002 월드컵 신화'를 이룬 외국인 감독이 떠난 뒤 차세대 유망주로 구성된 대표팀을 맡았다. 김감독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로 돌아간 2002년 11월 올림픽팀 지휘봉을 잡았다. 선샹푸는 중국을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 밑에서 코치를 했고, 월드컵이 끝나자 올림픽팀 감독이 됐다. 두 전임자의 빛나는 업적 때문에 어쩌면 '잘해야 본전'인 상황일 수도 있다.

3일 밤 감독으로서 첫 일전을 겨룬 두 사람에게 이번 올림픽 티켓은 결코 양보 못할 보물이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