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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서 한나라 압승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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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04면

최정동 기자

-지난 총선 경험에 비추어 이번 공천 경쟁을 어떻게 보시나요.

4년 前 한나라 공천 심사했던 이문열 인터뷰

“지난번엔 한나라당은 미증유의 위기 상항에서 선거를 맞았습니다. 두 번 연이은 대선 패배에서 오는 황폐함 같은 게 있었고 소위 ‘차떼기’라는 것으로 참혹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비관하는 사람들 경우에는 개헌 저지선, 100석 내외라도 확보할 수 있겠느냐, 그것조차 두렵다고 할 정도로 위기감에 빠져 있었죠. 공천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인재를 발굴, 영입하는 것보다는 ‘배제의 원리’가 우선했습니다. 쇄신·변화가 더 중요한 화두였죠. 그런데 지금의 공천을 보니까 상황이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나요.

“대선 승리에 굉장히 고양돼 가지고, 내가 보기엔 아무 근거도 없이 압승을 공언하고 개헌선을 거꾸로 (차지)하느니 할 정도로 위기감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공천이 마치 지난 대선의 논공행상 같은 걸로까지 비치게 하지요. 이 두 가지가 나쁘게 어우러진다면 아주 이상한 공천이 이뤄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한나라당이 마땅히 제거하거나 쇄신해야 할 부분은 하나도 변화하지 않고 이쪽저쪽으로 국회의원 자리가 나뉜다면 보나마나 참담한 꼴도 예측할 수 있는 거죠. 특히 두 달 이상 남아 있는데 그 사이에 얼마든지 국민적인 견제심리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대선을 이겼는데도 물갈이, 쇄신이라는 화두가 유효한가요.

“그래서 더 물갈이가 필요할지 몰라요. 지난 10년간의 소외 내지 패배에 원인이 된 사람들은 다음 번 패배의 원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충분한 검증이 필요한 거지요. 사실 물갈이라는 말 자체는 다른 말로 변화 혹은 쇄신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 말 자체를 못하게 해버려, 허허. ‘우리가 세운 공로에 대해 건드리지 말아라’ 이렇게 되거든요.”

-공심위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외부 인사로 영입된 위원들이나 위원장은 신뢰할 만한 분들이지요. 그런데 그게 원리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돼요. 지난번엔 쇄신안으로 내 목이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변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최병렬 전 대표도 우리가 ‘나오지 마십시오’ 해서 안 나왔어요. 공심위를 짠 거는 최 전 대표였거든. 홍사덕 전 의원 같은 경우도 굉장히 굴욕적인 요구를 받았죠. 결국 안정적인 자기 지역을 버리고 일산 가서 해봐라, 이런 식으로 됐어요. 이런 변화의 원칙에 거의 모든 의원이 동의했어요.”

-반발하는 의원은 어느 정도였나요.

“내 기억에 현역에서 그만둔 분들 중 60∼70%는 조용히 떠났어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여남은 명은 스스로 안 하겠다고 했고요. 오히려 행패 부린 분들이 기억날 만큼 소수였습니다.”

-의원이 반발하면 힘든가요.

“우선 심사위원인 의원들이 겁내죠. 어제까지 형님, 누님 하다 자르기가 힘들죠.

‘알면 큰일난다’고 하며 뒤로 미뤘다가 맨 끝에 했죠.”

-외부 심사위원들이 나서면 안 되나요.

“지난번에 외부 인사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의원들이 큰 테두리에 동의했기 때문이죠. 그때도 약간의 계파가 있어 격론이 벌어지긴 했어도 결국 의견이 모아지니까 우리도 선택하기가 좋았죠. 4년 동안 함께 생활한 분들에 비해 우리는 정보가 영 떨어지니 의원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지난 총선 때 배제시킨 사람 중에도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나요.

“잘못하면 내가 몰매 맞게 생겼는데, 사실 그때 명백하게 배제했던 사람들이 이번 경선에 이쪽저쪽 줄을 서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죠. 간신히 살아남은 인물 중에선 전면에 나서려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허허허.”

-양쪽 계파가 공천을 잘 분배하면 괜찮을까요.

“어렵지 않겠어요? 지역마다 복수로 나와 있던데. 나오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주저앉히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개인이 단체를 끌고 와 심사장을 점거하고 무력시위를 하고.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당신은 이러니 그만두시오’ 할 때 물러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 가셔도 한 번씩 경고를 하면 당에서 경청하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런 착각이랄까, 했습니다. 필요할 때 내가 충고를 하면 저 사람들이 들어주기도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선이 격화되면서 그게 딱 끝나버리더군요. 각자 유리한 대로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하고. 내 충고의 유효성이 사라졌어요.”

-어떤 식이었나요.

“지난해 왔을 때 경선이 격렬해질 싹수가 보이기에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고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한쪽에선 ‘너 이 자식 저쪽 편 드는 것 아니냐’ 하고 다른 쪽에선 ‘거 봐라. 이 양반도 심하다고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내 말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내가 어느 줄인지 밝히려고 애를 쓰고.”

-그런 시도가 있었습니까.

“댓글에서 봤어요. ‘아무개하고 아무개는 친척이다. 그럼 아무개가 누구 편인지 알겠지?’ 뭐 그런 거요, 허허. 그래서 입을 딱 다물었습니다. 정말 이전투구가 됐구나. 여기서 잘못하다간 성난 개한테 물리겠다 싶어서.”

-이런 식의 분란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번에 대통령 당선인도 감동적이라 할 만큼 큰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섬뜩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그 네거티브에도 불구하고 500만 표 이상 이기게 해준 이들이 갑자기 생겨난 사람들이 아니고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을 뽑고 4년 전 열린우리당을 과반으로 만들어 준 사람들이거든요. 민심이라든가 승리 같은 것들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무서운지를 예측할 수 있죠. 만약 이렇게 시작한 4년이 분란으로 잘못된다면 나는 뭐랄까, 굉장히 참담한 예상을 하게 되지요. 5년 뒤로 다시 돌아가 버리면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좌파 정권의 복귀를 말씀하는 것이지요?

“좌파인지 진보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이제 한국에서 우파나, 아니 우파라는 말은 싫고 자유민주주의라는 구태의연한 말로 표현하고 싶어요.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라든가 보수의 성숙하고 진지한 태도, 이런 것들이 설 자리가 영영 없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합니다.”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으로 보수 진영이 갈라진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그 부분이 대선 승리의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땐 굉장히 걱정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봐서는 저것도 하나의 필연이 아닌가 싶어요. 한나라당이라는 곳이 너무 많은 걸 싣고 있는 낡은 배 같은 겁니다. 이제는 좀 부려도 좋은 짐들, 부담만 되고 쓸모없는 짐들을 많이 싣고 있는데, 가혹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당이 생겨서 상당히 많은 짐을 그쪽에 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새 정부에 어떤 걸 주문하시겠습니까.

“지난 10년 동안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습니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이 저(1948년생)하고 동갑인데, 올해가 회갑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국민 형성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대한민국이 우리 조국이고 충성과 의무를 다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10년 전부터 갑자기 대한민국은 세상에 몹쓸 나라이고 국민이나 학살하고 양키한테 붙은, 아주 웃기는 것들의 집단이 됐어요. 세금 내라면 세금 내고 군대 오라면 군대 가고 국기에 대해 맹세한 사람들이 70, 80%인데 이들이 굉장히 상처 입었을 거예요. 나도 어느 날 보니까 내가 사람 같지도 않아. 지식인이나 양심 있는 예술가는 물론 아니고, 이거 완전히 참, 쥐새끼·거지 떼같이 이리 가라 하면 우우 하며 가고 세금 내고 군대 가고. 한평생이 어이 없는 거죠. 그런데 지난 10년 내내 늘 보는 것, 공영방송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게 90%가 대한민국이 오직 친일파와 미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정권이었다는 거거든요. ‘참 그래도 우리 대한민국 고생했다, 장하다’는 말은 10년간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른 분야도 그런가요.

“유사한 상처가 많지요. 우리는 자본주의 원리, 소유의 절대성 같은 것을 코 꿴 송아지처럼 믿고 따라왔습니다. 자기 일해서 돈 벌면 잘난 거고, 지가 번 것은 지가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그렇게 나쁜 짓이 없더군요. 허허허. 한편 생각하면 내가 이 바깥에 있을 게 아니고 감옥에 가든지 벌을 좀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 정부 역할은 뭐가 될까요.

“그런 상처를 다독인다는 것, 헐고 상한 정체성·정통성을 조금 치유를 해줘야 할 것이고요.”

-미국에 가신 이후 계획은 어떤가요.

“이번에 가면 연말에 짐을 싸서 완전히 귀국할 겁니다. 재작년엔 글 쓴다고 바빴는데 지난해엔 재미를 좀 봤습니다. 젊은 애들하고 같이 새로운 거를 배워보는 것도 좋았고.”

-배운 걸 조금만 나눠주세요.

“요새 번역을 몇 개 했어요. 초한지 같은 거. 옛날에는 번역이 틀렸다, 맞았다 하며 시끌시끌한 시비가 많았어요. 지금 느끼는 건 지식이 완전히 재편돼서 무식하거나 머리가 나빠 번역이 틀리는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게을러서 틀릴 순 있어도. 전산화가 잘돼 있고 지식이 잘 조직돼 있어요. 예전엔 얼마나 많이 읽어 머리에 입력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를 잘 알고 그걸 꺼내 조직하고 편집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있으신지요.

“2년 전 나갈 때 깊이 반성하고 다시 확인한 것 중 하나가 나는 작가라는 거, 이건 자기 경고이기도 한데, 내 삶이 가장 생산적·효율적이 되는 것도 작가일 때지, 그 이상 딴 건 안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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