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미래자동차와 인공두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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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래자동차 연구는 크게 환경친화와 인간친화의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석유 사용과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한 환경친화 자동차는 석유-전기 겸용 자동차로 개발된다. 인간친화 자동차는 운전자와 도로의 상황을 파악해 제공하고 간단한 대처를 하는 지능자동차에서부터 스스로 운전하는 무인자동차로 발전한다. 1980년대 방영된 TV 시리즈 ‘전격 Z작전’에 나오는 키트(KITT)가 무인자동차의 표본이다. 미국에서 열린 무인자동차 경주에서 2005년에는 사막을 10시간 달렸고, 2007년에는 도심지 90km를 다른 자동차와 함께 무사고로 주행했다. 이러한 인간친화 자동차의 핵심 요소는 뇌정보처리 기능을 모방해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공두뇌다.

지능자동차는 다양한 방법으로 도로 상황과 운전자 상태를 파악한다. 사람이 시각과 청각을 활용하듯 지능자동차는 카메라 이외에도 레이저·전자파·초음파 등을 사용해 도로, 노면 상태, 접근하는 자동차 등을 파악한다. 인간의 시청각계와 박쥐의 청각계 모델이 활용된다. 파악된 도로 상황은 특수 디스플레이를 통해 운전자의 시각정보로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자동차 내부에 장착된 생체센서는 운전자의 건강과 심리 상태를 측정한다. 맥박, 호흡, 눈꺼풀과 눈동자의 움직임 등이 측정된다. 핸들 조종, 가속기와 브레이크 밟기 등 행위패턴으로부터도 운전자 상태가 유추된다. 여기에는 인간의 인지모델이 활용된다. 정상인의 반응시간이 1초 내외지만, 술을 마셨거나 휴대전화를 쓰거나 복잡한 생각으로 심신이 피곤하면 반응시간이 50% 정도까지 느려질 수도 있다. 이는 15m 정도의 제동거리 차이를 준다. 대부분의 경우는 운전자에게 시청각 경고를 주지만,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경우에는 자동차 자체의 작동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지능자동차가 무인자동차로 발전하기 위해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능이 포함돼야 한다. 도로를 따라 주행하고 회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호등과 주위 자동차 움직임에 따라 가고 서고 차선 바꾸기를 반복해야 한다. 이는 안전에 직결되므로 무인자동차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무인자동차 경주에서 입증되었듯 뇌공학에 힘입어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인간의 반응시간보다 빠르고 심리적 영향이 없으므로 더욱 안전하다. 효율적인 운전으로 인해 교통흐름의 향상도 기대된다.

미국의 무인자동차 경주는 국방연구기관의 주도로 수행됐다. 국방기술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국방연구에서 시작됐다. 휴대전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무선통신 기술에 근간을 두고, 보잉707 항공기의 엔진도 B52 폭격기 엔진의 상용버전이다. 무인자동차 경주를 주관한 기관이 바로 초기 인터넷을 개발한 기관이다.

우리 한국인은 ‘초기 시도자’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새로운 것을 남들보다 먼저 시도하는 우리의 기질이 크게 기여했다. 또 해마다 두 번씩 민족대이동을 하며 지독한 교통체증을 겪기에 무인자동차의 필요성도 남다르다. IT와 자동차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공두뇌 기술도 우수하다. 인간친화 자동차를 통한 또 다른 도약이 기대된다.

이수영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