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용인 禹五亨씨 경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하룻밤 자고 나면 백만원씩 오를 정도로 아파트값이 폭등세를 보이던 89년 무렵에 우오형(禹五亨.57)씨는 친구들로부터 『그것봐라』며 핀잔을 곧잘 들었다.
아파트값이 폭등하기 전인 89년초에 강남의 40평형대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 데도 이를 마다고 용인의 골짜기 밭을 사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선대(先代)부터 용인에 갖고 있던 땅이 공공시설부지로 수용돼 보상금으로 약 1억원을 받았다.
역삼동 개나리아파트 41평형을 1억3천만원이면 살 수 있었으니 그때 아파트를 사두었더라면 그도 집값이 폭등할 때는 구름 위에 뜬 기분을 만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그의 선택을 나무라는 친구는 없다.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평창리 산장저수지 바로 옆에 들어선 그의집은 외관만 사치를 좀 부렸더라면 고급별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에 위치해 있다.저수지에 낚시하러 왔던 서울사람들이 구경삼아 그의 집에 들렀다가 강남에 있는 50평짜리 아파트와 맞바꾸자고 하는 일이 심심찮게 있을 정도다.강남의40평형대 아파트를 포기하고 전원주택을 선택한 덕분에 이제는 50평형대에 맞먹는 재산을 일구었 으니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옳았던 셈이다.
그러나 禹씨가 전원주택을 장만해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한89년 당시에 이런 결과를 예견했던 것은 아니었다.가족 모두가전원생활을 그리워했고 때마침 곤지암에 공장이 있는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돼 출퇴근도 서울보다 편리할 것이 라는 생각에 옮겼을 뿐이었다.토지보상을 받은 시점과 직장을 옮긴 때가 맞아 떨어져 별 망설임없이 전원주택을 선택했던 것이다.호숫가에 자리잡아 경관이 좋은 9백60평의 밭을 평당 약 7만원에 사들이고이중 2백60평을 대지로 형질변경 해 본채 30평,창고 20평의 농가주택을 짓는데 보상금 1억원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건축은 『시골에 살려면 튀지 않게 지어야 한다』는 부친의 당부대로 콘크리트 블록 벽체에 벽돌로 마감하는 평범한 스타일로 지었다.특이한 것은 벽돌을 외벽에 붙이는 일반주택과는 달리 내벽에 붙였다는 점.
「튀지 않게 짓는다」는 원칙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마당에는 잔디 대신에 자갈을 깔았다.마을과는 조금 떨어진 외딴집이라는 점을 감안해 바깥의 인기척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 한 배려였다.
이제 정년퇴직을 2~3년 앞둔 禹씨 부부는 60대에 새로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준비에 바쁘다.
부인 양혜선(梁惠善.50)씨는 禹씨가 퇴직하는 대로 부부가 함께 조그만 농장을 운영할 계획으로 농촌지도소에 나가 수경(水耕)재배법을 배 우고 있다.물이 좋아 수경재배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더구나 부부가 한양대화학과 동창생으로 이 분야에 나름대로 식견도 있어 다른 농사처럼 낯설지도 않다.시설재배자금 1억5천만원도 이미 신청해 놓았다.물 좋고 공기 맑은 전원에 살면서 무공해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지만 이곳이 바로 제2의 인생무대라는 점에서 禹씨 부부에게는 더욱 소중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龍仁=李光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