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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삼촌의꽃따라기] 복수초에게 언 땅은 따뜻한 이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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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복수초(上)와 가지복수초.

대한민국은 축복받은 땅이 분명하다. 어느 나라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마다 색다른 꽃과 인사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겨울이 무겁고 긴 옷자락을 아직 거두어가지 않은 이즈음에도 꽃소식은 들려온다. 꽃달력의 첫 장을 장식하는 단골손님 복수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 복수초의 안부를 가장 먼저 전해오는 곳은 동해시 천곡동의 냉천공원이다. 그곳에 가면 낙엽 밑에서 꼼지락거리는 복수초의 환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온난화의 영향 때문일까? 이미 지난해 12월 중순께부터 피어 두 해에 걸쳐 꼴찌와 일등을 석권하는 진기록을 낳기도 했다. 그렇게 조숙한 녀석들은 복수초 중에서도 가지복수초인 경우가 많은데 냉천공원의 것도 그렇다. 흔히들 개복수초라고 부른다. 복수초와 달리 가지복수초는 가지가 갈라지면서 하나 이상의 꽃이 달린다.

한라산에서는 잎이 가늘게 갈라지는 세복수초가 2월 중순께부터 피어나 동호인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진짜 복수초는 대개 3월 전국의 깊은 산과 섬 지방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전에 한번 눈 덮인 복수초를 찾아 강원도 화천의 광덕산을 헤맨 적이 있다. 눈은 아니어도 물가 쪽에 핀 것을 몇 포기 찾아냈다. 부동액이라도 넣고 있는 건지 그 모진 추위를 견뎌내는 뿌리가 궁금했다. 어떻게 생겼나 땅을 파보려다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다. 땅은 얼어 있었다. 돌로 내리쳐 봤지만 띵띵 하는 울림음만 되돌아왔다. 눈을 낮춰 들여다보니 오호라, 땅이 아니라 얼음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새순은 송곳처럼 뾰족했다. 그 생명력이 놀라워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얼음을 얼음으로 알지 않고 찬 눈송이를 따뜻한 솜이불인 양 덮고 피어나는 꽃이 복수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의 귀에는 복수초의 어감이 좀 껄끄러울 수 있겠다. 얼음 사이에서 핀다 하여 얼음새꽃, 눈을 녹이며(삭이며) 핀다 하여 눈색이꽃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우리식 이름이 듣기에 참 좋다. 북한에서는 복풀이라고 부른단다. 일본에서는 이 꽃의 황금색 꽃잎이 행복과 장수를 상징한다 하여 새해 선물로 애용되곤 한다. 동그랗게 닫혀 있던 꽃잎은 햇살을 받으면 수직으로 서면서 금잔 모양이 되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에서의 생약명은 측금잔화(側金盞花)이다. 햇빛을 받으면 꽃잎이 쟁반처럼 활짝 펼쳐진다. 하지만 날이 흐려지거나 늦은 오후가 되면 다시 오므라들기 때문에 꽃의 위치를 놓치기 십상이다.

아직 봄이 가깝지는 않다. 하지만 기다리지 말고 꽃을 찾아 나서면 그것이 곧 봄 아닌가. 언 땅의 눈색이꽃이 봄을 기다리지 않고 피어나듯이. 

글 쓰고 사진 찍은 이동혁은…

우리 풀꽃나무에 미친 남자다. 풀꽃과는 친구 사이고 나무와는 애인 관계다. 그의 블로그 ‘혁이삼촌의 풀꽃나무 일기’(http://blog.naver.com/freebowl)에는 산·들·갯내음이 풀풀 난다. 『오감으로 찾는 우리 풀꽃』 『처음 만나는 풀꽃이야기』 『처음 만나는 나무이야기』 세 권의 책을 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진기 하나 들고 어딘가를 걷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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