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탄압 사과합니다” 호주 러드 총리, 과거 잘못 첫 공식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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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호주 원주민 프랭크 바이르네(70)는 13일 호주 총리로는 처음으로 케빈 러드(사진) 총리가 과거 정부의 원주민 탄압 역사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다섯 살 때인 65년 전 정부에 의해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져 시설에 수용됐던 아픈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이르네가 떠난 후 그의 어머니는 발작을 일으켰고, 정신병원에 수용됐다가 7년 후 사망했다. 그는 호주 정부가 과거 원주민 아이들을 문명화한다며 강제로 부모와 가족들로부터 떼어내 시설에 가둔 이른바 ‘빼앗긴 세대(Stolen Generation)’의 한 명이다.

러드 총리는 이날 “원주민들, 특히 ‘빼앗긴 세대’에 슬픔·아픔과 손실을 끼친 호주의 과거 법과 정책에 대해 사과한다”며 “자랑스러운 민족과 자랑스러운 문화를 모욕하고 경멸한 데 대해 우리는 잘못했다”고 말했다. 이 사과문은 13일 연방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었다.

백인들이 호주에 정착한 18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계속된 ‘문명화 정책’으로 인해 강제 수용당한 원주민 어린이들은 주로 혼혈아들이었다. 97년 국가 조사위원회는 전체 원주민 아동의 약 10~30%가 이런 피해를 보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중 상당수는 신체적·성적 학대까지 당했다. 이들이 수용됐던 고아원이나 교회 시설의 담벼락에는 탈출을 막기 위해 철망을 쳐놓기도 했다.

당시 국가조사위원회는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을 권고했지만 보수당 정권은 오랫동안 이를 거부해 왔다. 러드 총리의 노동당은 사과는 하되 정부 차원의 보상은 하지 않겠다는 타협안을 통해 공식 사과에 대한 보수당의 찬성을 이끌어냈다. 러드는 보상금을 주는 대신 10년 안에 원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당수의 빼앗긴 세대는 정부 차원의 사과를 환영했지만, 정부가 보상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한 비판은 여전히 거세다. 빼앗긴 세대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인구의 2%(46만 명)를 차지하는 원주민은 호주에서 가장 문맹률과 빈곤율이 높다. 평균수명도 백인보다 17년이나 적다. 실업률은 백인보다 3배나 높고, 범죄로 구속되는 비율도 2.8배에 이른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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