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국민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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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민학교로는 서울 교동(校洞)국민학교를 꼽는다.그래서 국민학교의 내력을 되짚어보기에 좋다.갑오경장(甲午更張)이 있던 1894년 왕실학교로 출발했던 이 학교 교명(校名)은 한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에서 교동관립 고등소학교,관립교동보통학교,교동공립보통학교,교동심상(尋常)소학교,교동공립국민학교,경성교동공립국민학교를 거쳐 1947년 현재 이름으로 정착됐다.
지금이야 초등교육기관을 가리키는 말이 본디부터 국민학교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겠지만 내력을 따져보면 이렇듯소학교(1895년.소학교령)에서 시작,보통학교(1906년.보통학교령)-심상소학교(1938년.조선교육령 개정) -국민학교로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어 왔다는 얘기다.
어느 나라든 초등교육기관의 명칭은 기초.기본.초등의 뜻을 담고 있지「국민」이란 말을 쓰지는 않는다.국민학교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위한 전시(戰時)체제를 갖춰나가던 1941년의 일이다.
이 해 2월28일 일왕(日王)히로히토가 내린 칙령 148호「국민학교령」에서 나왔다.「황국(皇國)의 도(道)에 따라 초등 보통교육을 베풀어 국민의 기초적 연성(鍊成)을 위한다」는 목적에서였다.국민학교라는 이름엔 이처럼「황국신민(皇國 臣民)」을 양성하기 위한 일본의 제국주의.전체주의(全體主義).군국주의(軍國主義)의 냄새가 물씬 배어 있다.
이런 탓에 국민학교란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논의는 해방이후부터 제기돼 왔다.일본조차 1947년 군국주의 청산을 위해 국민학교란 명칭을 소학교로 바꾸었다.그럼에도 우리는 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지난 87년 교육개혁심의회가 다시 명칭변경 문제를 제기했고,그 이후에도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여러차례 개정 노력이 있었지만「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미뤄져 왔다. 이제 광복 50주년을 맞아 정부가 국민학교란 이름을 다른것으로 바꾸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소학교.보통학교.초등학교라는 이름에서부터 어린이학교.새싹학교.기초학교등 여러 이름이 물망에 오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미 귀에 익은 이름을 구태여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도있겠지만 소-중-대라는 체계에도 맞지 않고 작명(作名)동기도 불순한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못바꿀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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