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정부가 언론사 해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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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부가 언론사 컴퓨터 시스템에 불법 침입한 일로 네덜란드가 떠들썩하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신문사 수십 곳에 기사를 공급하는 네덜란드 최대의 뉴스 통신사 GPD가 사회복지부 대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대변인은 “사회복지부의 피에트 하인 도네르 장관을 다룬 심층분석 기사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며 고쳐 달라고 요구했다. 여기까진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항의받은 기사는 아직 출고하지 않은, 작성 중인 기사였다.

GPD가 발칵 뒤집어졌다. 조사 결과 사회복지부에서 누군가가 GPD의 뉴스 시스템에 수백 차례 접속해 발행하기 전의 기사를 훔쳐본 사실을 알아냈다. 주로 사회복지부와 장관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전직 통신사 직원이 해킹=검찰 조사와 사회복지부 내부 감사 결과 진상이 일부 드러났다. 2006년부터 사회복지부 직원 두 명이 360여 차례나 GPD의 시스템에 들어와 기사를 본 것이 확인됐다. 해킹한 사람은 GPD를 그만두고 사회복지부에 재취업한 여자였다. 아직 GPD에 다니는 남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GPD의 컴퓨터에 접속해 기사를 본 것이다. 몇 달 뒤 남편도 아내를 따라 사회복지부로 직장을 옮겼다. 그 뒤에도 다른 동료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확보해 접속을 계속했다. 사회복지부는 즉시 관련 직원들을 직위 해제했다.

18일엔 관련자 4명이 재판을 받는다. 유죄가 인정되면 최소 4년형을 살게 된다. 사회복지부 도네르 장관은 의회에 보낸 해명서에서 “사회복지부 직원 일부가 불법적으로 언론사 컴퓨터 시스템에 접근했지만 난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야당은 거짓말이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충격에 휩싸인 네덜란드와 유럽=네덜란드는 언론 자유가 크게 보장된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만큼 언론계와 시민들이 느끼는 충격도 크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는 전했다. 네덜란드 기자협회와 유럽 기자협회도 들고일어났다. 사건 직후 이들 단체는 성명을 발표하고 “네덜란드 정부가 조직적으로 언론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것이 아닌지 명확하게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부서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 측은 최근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등에서 언론인을 도청하거나 기사를 바꾸려 압력을 가하고 기사의 취재원 공개를 요구하는 일이 크게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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