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도 버텨다오”낙관론 쑥 들어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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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04면

두 달 전만 해도 서브프라임 사태는 국내 경제에 ‘강 건너 불’이었다. 미국 집값이 떨어지고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지만 한국 경제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수출입이 두 자릿수 비율로 늘어나며 7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국내총생산도 예상 밖으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기업과 소비자의 경기 전망도 낙관적이었다. 주식시장엔 ‘디커플링(탈동조화)’이란 말이 유행했다.

걱정 커지는 한국 경제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주식값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서브프라임의 파장이 미국에 국한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해지면서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기 시작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신승관 박사는 “서브프라임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2월과 8월에 낙관론을 폈던 사람들의 주장이 틀린 것으로 나타나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 경제가 서브프라임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던 데엔 운이 크게 작용했다. ‘우물 안 개구리’인 국내 금융사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증폭시킨 복잡한 금융파생상품 거래에 소극적이었다. 물린 돈이 거의 없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도 결과적으로 예방주사를 놓은 셈이 됐다. 재건축 규제와 전매 제한, 실거래가 과세, 분양가 상한제,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세 중과로도 부족해 담보대출비율을 집값의 40%로 제한하는 DTI 규제까지 내놓았다. 서브프라임의 원인이 된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이 국내에선 원천 봉쇄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걱정이 늘어가는 건 서브프라임 사태가 부동산과 금융의 영역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미국 중하류층의 부채위기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은 이제 전 국민이 함께 겪는 자산위기로 확대됐다.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금융권은 물론 제조업까지 영향을 받게 됐다. 미국의 소비와 성장 침체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미래엔 ‘빨간 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국내 경제성장률이 0.28%포인트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세계 경제가 함께 둔화하면 그 폭은 0.51%포인트까지 떨어진다. 미국이 한국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21.8%에서 지난해 12.5%로 떨어졌는 데도 그렇다.

더 큰 걱정은 ‘한국 경제의 구원투수’인 중국이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기대 수출을 크게 늘려왔다. 중국과 홍콩에 대한 수출 비중은 미국의 두 배, 일본의 세 배에 이른다. 한국과 중국의 역할분담도 뚜렷해졌다. 한국의 중간재와 부품이 중국 노동자의 손길로 조립돼 세계시장에 팔려나가는 구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 같은 분업형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5년 전체의 18%에서 2006년 35%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감기에 걸리면 한국 경제는 몸살을 앓게 된다. 이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이인우 국제금융센터 팀장은 “중국의 대미 수출비중이 20% 미만으로 떨어졌고 내수 성장도 가파르다”며 “서브프라임이 중국의 성장률을 1∼2%포인트 떨어뜨리는 정도로는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대미 수출품이 대부분 값싼 생활필수품이어서 경기 위축에 크게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근거로 제시된다.

반면 유정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 경제의 버블 조짐이 걱정스럽다”고 진단했다. 경기침체에 대한 내성이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기대 수준보다 성장하지 못하면 여파가 커진다는 것이다. 외국어대 임기영 경제학과 교수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이 높아가는 게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불안심리는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임 교수는 “서브프라임의 파장이 커지고 중국 경제의 뚝심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서 금리·환율마저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과 가계가 위축되면 올 성장률이 4%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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