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베트남-연하담씨의 하롱바이 탐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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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우기라고는 하나 무척 더운 날이었다.
지난해 7월 어느날.방콕에서 베트남 항공을 이용해 하노이공항에 도착했다.태국 북부 치앙라이 고산족 마을을 답사하고 난뒤 연전에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청각장애자 친선대회에서 만난 으엉과 하이퐁 농 아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하노이 공항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다.비자를 점검하는 출입국 관리들의 얼굴에는 표정이없었다.「시간이 돈」이라는 생각과 어차피 우리나라와는 비교되지않을 만큼 물가가 싼 나라라는 불완전한 지식으 로 택시를 잡았다.덕택에 하노이에 돌아와 요금을 지불하며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2박3일동안 5백여㎞를 달려 무려 1백50달러를 택시비로탕진한 것이다.근로자 월평균 임금이 30달러고 맛있는 퍼(국수)한그릇 값이 3천동(dong:미 화1달러는 1만동)정도인 나라에서 아무리 한나라의 수도요 베트남인의 영웅 호치민의 성역화된 묘소가 있다지만.나는 과감히 하노이를 통과해 하이쭝을 거쳐하이퐁으로 향했다.
거의 네 시간이 걸려 어둠이 깔릴 무렵 하이퐁 가까이 이르렀을 때,목도 마르고 휴식도 취할 겸 잠시 차를 세웠다.마침 스콜이 닥쳐왔다.그리고 갑자기 장대같은 빗줄기가 인정사정없이 외로운 이방인을 적셨다.문자 그대로 머리에서 발끝까 지.
밤늦게 물어물어 찾아간 으엉네집 식구들은 속으로는 놀라고 당황했을텐데도,차분하니 웃는 얼굴로 비에 젖은 객을 맞아 주었다.그리고 금세 차를 끓여 권하고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고생한 보람이 있었다.으엉은 말할 것도 없고 그집 식구들 은 전형적인순박함을 지닌 아름다운 베트남 사람들이다.누추하지만 호텔에 묵지 말고 자신들의 집에서 자라고 했다.현지인의 사는 모습을 느껴보고 싶었던 나는 한번쯤 사양한 뒤에 곧바로 응낙했다.베트남에서는 사양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금방 응하는 것은 실례라고 한다.문제는 잠시 뒤에 생겼다.경찰이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신고와 간섭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라 베트남에서는 이런 종류의 불편함이 적지 않다.사람들은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친절하고 정이 많다.그러나 제도가 자연스런인성을 억압하고 삶의 즐거움을 뺏는 것이다.나는 그날 밤 나가잤다.밤새 호텔 창밖으로는 번갯불의 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나는 친구인 으엉을 태우러 갔다.지난 밤으엉은 나에게 하롱바이를 구경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우리는 하이퐁 부두에서 도강하는 첫 나룻배를 탔다.자동차도 배에 올랐다.이렇게 두 차례의 도강과 3시간여의 자동차 노 정 끝에 다다른 곳은 하이퐁 동쪽 60㎞지점에 위치한 하롱바이.간간이 비도맞았다. 이름만으로는 충분히 생소한 하롱바이(영어식 발음은 하롱베이)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지정할만큼 한 폭의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베트남 제일의 관광명소다.중국 남부와 접해 있어 역사상 수많은 전투와 침입을 목격해온 하롱바이.이곳 완만한 굴곡의 해안에서 바다쪽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이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바이차이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나가보면 결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만큼 넓고(3,800평방㎞)멋진 바다의 모습이 계속해 시야에 들어 온다.
다도해라는 말로는 부족한,아득한 옛날 하강한 용이 승천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의 바다 하롱바이는 석회암으로 된 크고 작은 섬들이 무려 3천여개나 된다고 했다.물론 사람들은 살지 않는다.바다 위에 우뚝우뚝 절벽 처럼 솟은 가파른 섬과 기괴한 모양으로 부식되어 오히려 장관인 섬 사이를누비는 하롱바이 섬 일주에 네 시간은 족히 걸린다.수많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거북들이 무리를 지어 바다를 순례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게 하 는 섬 천국 하롱바이.가장 아름다운 동굴은 단연 향다우코로 「경이의 굴」이라는 별명에걸맞게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들의 군상이 마치 새들과 기이한 짐승들이 모인 동물원처럼 보인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속도로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여자가주로 노를 젓는 쌈판이라 불리는 쪽배가 다가와 생선을 사지 않겠는지 말없이 의중을 묻는다.그러다가 말없이 또 멀어져 간다.
이곳 사람들은 결코 아우성치는 법이 없다.싱싱한 생선회.전복.대하.게.새우등을 거침없이 좋아하는 사람이나,바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장소 하롱바이.
낚싯바늘이 물속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물고기가 잡혀 올라온다는유람선 선장의 말이 다소는 과장됐지만,코발트빛으로 끝없이 푸른바다,시원한 해풍,기암괴석의 절경만으로도 낚싯대는 그냥 뱃전에걸쳐놓기만해도 좋지 싶었다.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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