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인수위 귀를 열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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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8일 오후 교육인적자원부 간부들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서남수 차관 주재로 영어 교육 관련 정책토론회를 열 예정이었다. 회의 2시간 전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스톱’ 사인을 보내온 것이다.

토론회는 30일 열리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공교육 영어 완성 프로젝트 공청회’를 앞두고 교육부의 준비 사항과 그간의 추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자리였다. 자료를 챙기던 실무자들은 “무슨 일이 났느냐”며 혼란스러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관계자는 “인수위의 요청에 회의를 열 수가 없었다”며 겸연쩍어 했다. 인수위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교육부는 인수위 출범 이후 교육 문제에 대해 철저히 배제돼 왔다. 이달 초 교육부 실무자들이 인수위를 찾아가 과별 실무 보고를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수위가 벌여 놓은 일은 결국 새 정부에서 우리가 수습해야 할 텐데 의견조차 낼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인수위의 ‘닫힌 귀’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교육부만이 아니다. 30일 영어 공청회 참석 ‘콜’을 받은 한 인사는 “누가 참석하는지, 뭘 토론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며 어이없어 했다. 공청회에 13명이 참석한다는 것만 알려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출범 한 달을 맞은 인수위는 교육분야에서 의욕적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학교 교육을 강화해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옳은 일이다. 그러나 섣부른 정책으로 학생·학부모·교사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영어 교육체계 개편안이 그렇다. 2013학년도부터 영어능력평가시험 도입(22일)→(영어능력평가시험) 등급제 실시 검토(23일)→2013학년도부터 읽기·듣기만 평가(28일) 등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국민은 어리둥절해한다.

평준화 대입과 말 벙어리 영어 교육은 뜯어고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귀까지 닫아 가며 정책부터 내놓은 것은 생각해 볼이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이날 소동이 일자 “교육부에 토론회 중단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교육부가 필요 없는 일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이길 바란다.

강홍준 정책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