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노총과 일단 대화는 해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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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유야 어찌됐든 오늘로 예정된 당선인과 민주노총의 만남이 갑자기 무산됐다. 민주노총은 일방적인 회담 취소를 문제 삼으며 인수위 측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구태여 책임 소재를 따지면 이번 사안의 책임은 민주노총이 대부분 져야 한다. 당선인이 노동계 지도부를 만나려는 이유가 뭔가. 노사관계 잘 만드는 데 협조해 달라는 부탁일 게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지난해 대선 이후 한번이라도 그에 부응하는 자세를 보인 적이 있었나. 철도 멈추고 전기 끊어 국가신뢰도를 떨어뜨리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더니 지난주엔 대의원대회를 열어 새 정부에 대한 상시투쟁 체제를 선포했다. 회동 예정일 불과 5일 전이다. 이러니 만나본들 무슨 생산적인 대화가 되겠나 말이다.

하지만 당선인 쪽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노동계 쪽 말마따나 대선 전후 지금까지 노동문제에 대해 내놓은 청사진이 뭐가 있나. 스스로 ‘비즈니스맨 프렌들리’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출총제 폐지 등 친기업 정책이 쏟아질 때 노동 관련 정책 제시라곤 ‘법과 원칙 준수’란 말이 고작이었다. 비정규직, 공기업 민영화, 산업재해 등 시급한 노동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도 말이다.

이번에 인수위 측이 회담 결렬 이유로 내세운 이석행 위원장의 법 질서 위배 문제도 구실로는 시원치 않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 민주노총 위원장의 경찰 출석 요구 불응을 문제삼아 갑자기 중요한 만남을 취소한다는 건 어쩐지 어른스럽지 못하게 보인다.

당선인은 국민의 대통령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도 국민이며 끌어 안아야 할 대상이다. 아이가 보채면 일단은 구슬러 보는 게 순서지, 매부터 들이대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물론 노사 문제 해결에 법과 원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법과 원칙만으로 노사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대화와 타협도 존중되어야 한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도록 최선을 다해 유도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밥그릇을 깨는 불법 집단에 대해서는 노사를 막론하고 추상같이 법을 적용하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올바른 노사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