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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재팬의 토시, 영혼 달래는 ‘구명시식’ 동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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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억울한 영혼을 구제해주는 의식인 구명시식(救命施食)을 20년간 치러온 차길진 법사<右>가 자신을 위해 지난 주 방한한 일본 록그룹 엑스재팬(X-Japan)의 멤버 토시<左>와 서울의 한 소극장에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둘은 2005년 차길진 법사의 삿포로 구명시식 때 만나 지금껏 인연을 이어왔다. [사진=박종근 기자]

 한눈에 알아보았단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란 걸.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아들로 불교신문 사장이기도 한 차길진 법사(61)가 일본 록그룹 엑스재팬(X-Japan)의 멤버 토시(Toshi, 본명 데야마 토시미츠·出山利三·41)를 처음 만났을 때의 얘기다. 2005년 여름 삿포로에서다.

 차 법사는 그런 토시에게서 슬픔·막막함·괴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히데의 죽음 때문인지,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노래도 하질 않고, 어두웠어요.”

 마침 차 법사는 영혼 구제 의식인 ‘구명시식(救命施食)’을 해오고 있었다. 구명시식이란 원래 몸과 마음의 질병에 시달리는 중생들을 고승들이 치유해주는 의식이라고 한다. 그는 춤과 노래·공연을 곁들인 이 의식을 통해 일본에 강제징용됐다 희생된 한국인이나 9·11 테러로 희생된 이들의 아픈 영혼을 달래고 어루만져왔다. 그래서 차 법사는 토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룹 활동으로 최정상의 환희까지 맛봤지만, 그 당시엔 인생의 좌표를 잃고 방황을 하고 있더군요. 여러 이야기를 해줬죠.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진다며 오랫동안 놓았던 마이크도 잡습디다.”

 어떤 얘기를 해줬느냐고 캐물었다. 선문답 같은 답이 돌아왔다.

 “토시에게 ‘나 하나 꽃 피어 있다고 꽃밭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나와 네가 같이 제각각 아름답게 꽃으로 피어나면 자연스레 이 세상은 꽃밭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지요.”

 무슨 뜻인지 물어봤다.

 “히데라는 꽃이 사라져서 슬프겠지만, 그래도 토시가 하나의 아름다운 꽃으로 스스로 피워나가면, 결국 히데도 아름다운 (영혼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뒤 돈독한 인연을 쌓아온 두 사람이 23일 저녁 다시 자리를 함께했다. 차 법사의 구명시식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차 법사는 구명시식을 아예 공연처럼 만들어 이날 저녁 대학로 소극장에서 무대에 올렸다. 그는 다음달 20일까지 매주 월요일과 설 연휴를 제외한 매일 공연을 연다.

 23일 공연은 영혼결혼식을 주제로, 전통무용과 동서양의 음악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한 명의 특별한 손님으로 토시를 무대에 올렸다. 그는 공연의 절정에서 히데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인 ‘기미와 이나이까(君は いないか: 너는 없는 것인가)’를 열창했다. 애절한 가락에 눈물을 훔치는 중년 관객도 여럿 보였다. 일본어로 노래했고, 중년 관객에겐 조금은 생소했을 엑스재팬의 멤버였다는 것은 상관없었다. 진심이 통한 것이다. 차 법사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차 법사가 해원을 해준 덕분인지 몰라도, 엑스재팬은 3월 재결합을 앞두고 있다.

 차 법사는 지금까지 언론계와 문학계 등에서 범종교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앞으로는 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구명시식을 통한 ‘해원’에 보다 넓고 깊게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영혼을 달래는 일, 종교를 뛰어넘어 아픈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구명시식을 20년이나 해왔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강을 떠나야 바다를 갈 수 있지요. 우리 많이 웃읍시다.”

전수진 기자

◇엑스재팬(X-Japan)=1982년 결성한 록그룹으로 80~90년대 화려한 분장을 하고 공연하는 이른바 ‘비주얼 록’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97년 토시가 탈퇴한 뒤 해체됐다. 그 직후 기타리스트인 히데(본명 마쓰모토 히데토)가 갑작스레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엔들리스 레인(Endless Rain)’을 비롯한 히트곡으로 한국에서도 팬층이 두텁다. 지난해 영화 ‘쏘우4’의 음악을 맡으면서 재결합을 선언, 올 3월 도쿄 돔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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