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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총재님과 맥도널드등 햄버거 투어 다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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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제일 가까운 곳에 그가 있었지만 어떤 인연이 두 사람을 한데 묶어놓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전 총재의 미국 생활을 보필한 그가 박사에 중견기업인 한성실업의 지성한(75) 회장의 외아들이라는 사실도 사람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가장 쏠린 부분은 역시 그가 2005년 톱스타였던 심은하씨를 아내로 맞았다는 점이다. 14일 자유신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변인으로 정치권에 ‘커밍 아웃’한 지상욱(43)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그는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서길 주춤하는 모습이었다.

지 대변인과의 인터뷰는 24일 이 전 총재의 대선 캠프였던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에서 이뤄졌다. “내 얘기를 쓰는 것은 사양하겠다”며 거절하는 그를 어렵사리 대화 테이블에 앉혔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 전 총재의 미국 생활부터 물었다. 이 전 총재는 두 번째 대선 패배 직후인 2003년 3월 부인 한인옥 여사와 함께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로 연수를 떠났다. 7개월의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지 대변인은 이 전 총재 내외의 모든 일을 혼자서 도왔다.

-이 전 총재를 보좌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는 선배들이 ‘총재님이 미국에 가시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제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를 했으니까. 고민을 하다 부모님께 상의를 드렸죠. 아버지께서 ‘네가 원하면 해라. 훌륭한 분이 외로운 입장에 놓였을 때 도와드리고 가까이서 모실 수 있다는 것은 장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로 다니던 직장(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사표를 냈습니다.”

-이 전 총재의 장남 정연씨와 가깝다고 하는데.

“맞습니다. (정연씨가) 유펜(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공부할 때 제 친구가 룸메이트였지요.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친해졌습니다.”

이 전 총재 내외와 지 대변인은 스탠퍼드대 인근의 멘로 파크라는 동네에 머물렀다. 이 전 총재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얻었고 지 대변인은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방 하나짜리 숙소를 구했다. 아침에 일어나 이 전 총재 댁으로 가 식사를 함께하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러면 세 끼 식사를 늘 같이한 거네요.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살이 엄청 찌는 거예요. 두 내외분이 ‘남의 귀한 아들 살 빠지게 하면 안 된다’면서 배가 부를 때도 더 먹으라고 권하셨어요. 제 몸무게가 70㎏ 안팎인데 그때 75∼76㎏까지 올라가더군요. 안 되겠다 싶어서 나중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저녁은 따로 먹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총재님을 모시고 학교에 출근해서 점심은 늘 함께했지요.”

2003년 9월 미국 연수 중이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왼쪽)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방문한 지상욱 대변인.

-이 전 총재가 양식을 잘 드시나요.

“햄버거를 좋아하세요. 처음엔 맥도널드를 많이 갔는데 총재님이 ‘다른 집 햄버거도 먹어 보자’고 하셔서 ‘인 앤드 아웃’이라는 집으로 모시고 갔어요. 그 다음엔 웬디스, 햄버거 파는 동네 식당 등등…. ‘햄버거 투어’를 했어요.(웃음)”

-그런데도 이 전 총재는 살이 안 찌시는가 봐요.

“예. 체질인 거 같아요. 운동도 많이 하시고요.”

-미국선 어떤 운동을 하셨는지요.

“테니스요.”

이 대목에서 그는 이 전 총재 자랑을 시작했다.

“동네 운동용품점에 갔는데 라켓과 신발을 제 것까지 똑같은 걸로 사시는 거예요. 대개 좀 차이가 나는 걸로 사잖아요, 이런 경우에.”

-커플 룩이었겠네요.

“맞아요. 아직도 안 잊히는 일이 있어요. 퇴근 후 댁에 모셔 드리고 내 방으로 왔는데 총재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지 박사, 지금 바빠요?’ 하시기에 괜찮다고 대답했죠. 쭈뼛쭈뼛하시더니 ‘바쁘지 않으면 나하고 테니스 한 판 쳐줄 테야’ 그러세요. 사람들은 총재님이 차갑다, 날카롭다 하는데 그건 정말 모르는 얘기입니다. 농담도 잘하세요.”

이 전 총재는 학창 시절 여학생을 괴롭히는 불량배에게 대들다 맞아서 코뼈가 부러진 일화를 두고서는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지 박사, 코뼈 맞으니까 되게 아프데. 깡패들은 선전포고 없이 ‘선방’(먼저 때리는 것의 은어)을 놓더라. 그걸 알았다면 안 맞았을 텐데…. 자네도 그런 일 있으면 경계해.”

대선 패배 후 결심한 미국행인데 마음이 편하기만 하진 않았을 터.

-미국에 계실 때 대선 얘기는 않으시던가요.

“정치 얘기는 잘 안 하셨습니다. 이 생각이 나네요. 화창한 날 총재님 연구실이 있던 ‘후버 타워’ 10층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가끔 방에 들어가면 뒷짐을 진 채 창밖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총재님이 ‘경치 좋다’ 하며 그러시진 않으셨을 테고….”

-한국 정치를 완전히 잊기는 어려우셨겠죠.

“한번은 지인이 미국을 방문했다며 총재님께 전화를 했어요. 통화 끝에 총재님께서 매우 아끼셨던 모 의원도 함께 왔으니 곧 전화가 갈 거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러곤 제가 밖에 나와 일을 보다 총재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총재님이 너무 반가운 목소리로 ‘○ 의원이야?’하며 받으시는 거예요. 제가 ‘총재님, 접니다’ 그랬더니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아, 지 박사야’ 하시는데 제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 의원이 전화를 하긴 했나요.

“안 했습니다.”

얘기가 무거워진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부인 심은하씨 얘기를 물었다.

-결혼하실 때 이 전 총재 내외께선 뭐라시던가요.

“서빙고동 자택을 찾아가 한 여사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어요.”

다음은 그가 들려준 당시 대화 내용이다.

지 대변인=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한 여사=잘됐네. 어느 규수야?
지 대변인=이름을 들으시면 아실 수도 있습니다. 배우였던 심은하입니다.
한 여사=(잠시 놀란 표정을 지은 뒤) 그림도 그리는 배우?
지 대변인=맞습니다.
그때 이 전 총재가 들어왔다.
한 여사=여보. 우리 지 박사가 드디어 결혼한대요.
이 전 총재=그래? 축하해.
한 여사=상대가 심은하씨래요.
이 전 총재=(잘 모르는 듯)….
한 여사=왜 있잖아요. 그림 전시회도 하고.
이 전 총재=누군지 알 거 같네. 자네 사무실 나오지 말고 준비 잘해.

-함께 인사도 가셨지요?

“물론이죠. 명절 때면 아이와 함께 인사 드리러 가지요. 지난번에 한 여사님 생신 저녁모임에 갔는데 갑자기 집사람에게 인사말을 시켰어요. 집사람은 ‘남편이 바쁜 가운데서도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고 열심히 사는 모습 보면서 남편을 더 사랑하게 됐고,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총재님과 한 여사님을 저도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어요.”

-미리 준비한 멘트였나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군요. 카메라 앞에서도 안 그랬던 자기가 그날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렸다고 하더군요.”

-부인이 정치권에 들어선 걸 좋아하시나요.

“처음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이해를 해줍니다.”

주변 얘기에 빠져들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 대변인은 계속 울리는 휴대전화에 불안한 기색을 비치기 시작했다.

-4월 총선에 출마하시나요.

“총재님께서 새로운 정치 세력을 발굴하기 위해 집을 짓고 계신 상황에서 그런 얘기 꺼낸다는 자체가 시기상조입니다. 제가 정치에 들어섰다고 생각들을 하시는데 저는 아버지를 돕는 아들의 입장이라는 마음뿐입니다.”

-대변인으로서 요즘 인수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보십니까.

“저희는 좋은 정책은 지원하자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요새 과속 질주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운하라든가.”

-하긴 토목·건설 전문가시지요.

“우리 국책사업 실패 사례를 조사해 보면 선진국에 비해 기획 단계가 너무 짧아요. 외국은 4·5년, 길게는 10년 이상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지나치게 빨리 진행을 하니 설계 변경이 많아지고 계획된 경비 규모보다 4, 5배씩 늘어나곤 합니다. 임기 내 완공을 고집하지 말고 국가 백년대계 차원의 신중한 정책과 사업들이 나와야지요. 최근 발표한 광역 경제권 정책은 저희의 대선 공약 1호인 ‘강소국 연방제’의 일부와 매우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희 정책이 우수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요. 아쉬운 건 인수위가 ‘이회창 캠프의 강소국 연방제를 참고한 정책’이라고 밝혔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요.”

-이번 총선의 목표는 어느 정도인가요.

“한나라당을 실효성 있게 견제하는 세력이 되려고 합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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