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스로 간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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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37면

갖고 있던 청바지를 지난봄, 한 벌만 남기고 싹 처분했다.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에 한 벌을 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또 한 벌이 필요했다. 남아있는 두 벌 모두 얇아서 여름에나 입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주저 없이 리바이스 매장으로 향했다. 고를 일도 없었다. 프리미엄 에코 진으로, 스트레이트 피트로, 워싱은 하지 않은 것으로.
한 번 입어보고 곧장 계산했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옷인데도 미리 정해두고 두 번 생각하지 않은 것은,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마다 걸린 리바이스 광고 속 조인성과 조금이라도 비슷해 보일까 해서는 아니었다(그런 터무니없는 욕심을 품었던들 다리 길이를 따라갈 리도 없으니까). 이유는 하나, ‘에코’였다. 리바이스 에코 진은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진다. 청바지가 유기농이라고 뭐 그리 달라? 괜히 더 비싸게 받으려는 상술 아냐? 이런 반응이 아마 가장 앞설 것 같다.

유기농 면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내 몸에 크게 다를 건 없다. 나도 안다. 면화가 농약 없이 재배됐다 해도 그 뒤로 염색을 비롯한 수많은 공정을 거칠 테니 몸에 썩 더 좋을 까닭은 없다. 유기농 농산물에 비해 유기농 의류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겠다.

농약 안 쓰고 화학비료 안 써서 키운 농산물이면 다른 것은 제쳐놓더라도 내 몸에는 좋을 테니 일단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반면 청바지까지 유기농을 따지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면화는 세계적으로 농약 사용량이 많은 작물로 손꼽힌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면화 재배에는 전 세계 농약의 25%가 사용되며, 농약으로 인해 면화 재배 지역과 농민들에게 일어나는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인도·중국 등 다른 나라의 일로 넘겨버릴 수 없다. 자세히 설명하기란 이 지면으로는 힘드니 간단히 말하자면, 농약은 분해과정에서 지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우리와 우리 아이들도 그 피해에서 예외가 아니다. 먹는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면화도 소비자의 선택으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수요가 있으면 의류회사에서는 유기농 면화를 더 많이 살 것이고, 농약을 쓰지 않고 애써 가꾼 면화가 그만한 값을 받을 수 있다면 인도 등지의 지역 농민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유기 재배가 더 늘어날 것이고, 지금은 면화 생산량 0.1%에 불과한 유기농 면화의 비율이 더 커질 수 있다. 또 이것은 그 지역 농민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옷은 날개가 되어야 한다. 유럽과 미주에서는 유기농 소재만 써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밴드 U2의 리드싱어 보노는 ‘Edun’이라는 의류 브랜드를 출범시키고, 유기농 소재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공장 노동자에게도 정당한 임금을 지불함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리바이스·아메리칸 어패럴·

팀버랜드 등 외국 브랜드 제품도 있고, 국내 브랜드인 베이직하우스와 헤지스에서 유기농 면 티셔츠, 청바지가 나와 있다. 이런 움직임이 또 다른 마케팅 수단일 수도 있다. 나도 그 기업들이 오직 윤리의식만으로 유기농 제품을 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케팅에 넘어가줌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기꺼이 넘어가겠다. 유기농 면 의류를 입는 게 ‘내’ 건강에 좋다는 광고에는 코웃음 쳐도 좋겠다. 그러나 의미 있는 선택임은 분명하다.

* ‘아기 다다시의 와인의 기쁨’은 이번 주부터 본지 31면으로 이동, 연재됩니다.


글쓴이 조동섭은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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