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밤나무 살려 두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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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푸른 하늘과 벌거벗은 밤나무가 보인다. 밤나무 가지에 맺힌 작은 빗방울이 반짝이고 공기를 가르는 갈매기와 새들도 은빛으로 빛난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나는 살아남아 이들을 보게 될 것이고 이들이 있는 한 나는 불행할 수 없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의 한 부분이다.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비밀 다락방에 숨어 지내다 45년 3월 나치에 발각돼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2년 넘는 은신 생활 동안 창 밖의 밤나무(사진)는 위안을 주는 친구였다. 150살이 넘은 이 나무가 병이 들었다. 무게만 30t에 달하는 이 나무는 곰팡이균과 이끼로 인해 몸통의 절반이 썩었다.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시는 안전을 이유로 나무를 베려 했다. 그러자 지역주민과 환경론자들이 “이 밤나무는 안네 프랑크와 유대인 박해 역사의 일부분”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시 당국과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밤나무를 구했다. 법원은 “벌목을 중단하고 이달까지 대안을 모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암스테르담시 당국은 23일 “철제 버팀목을 설치해 안네 프랑크의 밤나무를 살리는 쪽으로 환경단체 등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나무의 관리는 ‘안네 프랑크 밤나무 지원을 위한 재단(SAFTF)’이 맡는다. SAFTF는 3월까지 나무 주변에 철제 버팀목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 정도 더 살 것으로 보인다.

버팀목 제작에 드는 5만 유로(6900만원)와 연간 유지 비용인 1만 유로(1380만원) 등은 기금을 마련해 충당할 계획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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