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촌티나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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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바람(風)이 눈에 보이는가.물론 안 보인다.그렇다고 바람부는것을 알 수 없는가.나뭇잎이 흔들리면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아는 것이다.
민자당의 김덕룡(金德龍)의원이 사무총장자리에 앉자마자 지방행정구역개편 얘기를 내놓았다.그는 『경실련(經實聯)이 마침 행정구역 개편문제를 들고나와 한번 논의를 해보자는 의도』일 뿐이며『우리가 지자체 선거의 주체인데 시민단체에서 그 런 주장을 했다는 것에 일종의 자기반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말하자면 남이 옆구리를 찔러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피동적.우발적 발언일뿐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초장부터 그것이 피동적이지도,우발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그것이 지방선거연기를 겨냥한것이라고까지단정하거나 확증을 갖지는 않더라도 뭔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은 금방 낌새를 챘다.그리고 그의 발론(發論)1주일만에 이춘구(李春九)당대표가 국회 본회의 대표발언에서 행정구역개편을 공식 제의했을때는 「그러면 그렇지」하고 확인만 했을뿐이다.
「바람」의 방증(傍證)은 어디 金총장의 발언뿐이었는가.경기도도지사(道知事)가 경질됐다.도내(道內)지자체선거 출마예상자에 대한 동향조사가 실시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하루거리로 이번에는 부총리가 해임됐다.그가삐 부장으로 재직했을 당시 안기부가 지자체선거 연기에 대한 여론을 수집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언필칭(言必稱)문민정부시대다.대통령은 세계화까지 얘기한다.정부와 당의 세계화를 위해 물의마저 수반된 대대적 인사(人事)까지 단행한게 엊그제다.그만큼 세상은 바뀌었는가.새 정부와 여당의 대답은 예스다.과연 그런가.새 시대와 세계화는 무엇인가.세계화등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들이 많다.자명한 것은 새 시대와 세계화가 실현된 사회라면 세상에 촌티가 없어지고 하는 일들에 투명성(透明性)이 커진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 사회 각 부문중 여전히 정치(政治)가 가장 낙후돼있다고들 비판한다.수긍이 가는 평가다.정치인의 언행에 특히 투명성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국정책임자가 공명선거를 위한 관(官)의 중립을 다짐하고 정보기관의 정치공작 금지를 언명해도,부총리가 해임되는 등의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는 그렇지않다.집권당 최고간부가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바보가 되지않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신뢰와 투명성이 세계화 수준에는 미흡하다. 문민정부가 손가락질하는 과거 정부들의 정치작태는 공작정치가 특징이었다.주요 국정과 정책이 비공개 과정으로 일관했다.그의 실행작전.전술이 밀실(密室)에서 짜여졌다.그 일부를 외부에 흘린후 연막을 피우는 일을 국민들이 한두번 경험했는 가.
당사자들은 이를 세련된 정치기법(技法)으로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없는건 아니다.미국의 백악관(白堊館)은 기사가 많이 나온다.소위 익명의 「고위 소식통」이 제공하는 것으로 돼있는 관측기구(觀測氣球)성격의 보도들이 유난히 많다.그러나 이는 입안(立案)초기단계의 일들이다.
지금 민자당도 관측기구를 띄우고 있는 것인가.여당은 지방선거를 예정대로 치른다고 말한다.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당내 소장의원 수십명이 서울시 분할문제등을 공개 거론하고 있는 실정이다.설사 야당이 호응한다고 가정하는 경우라도 시 간이 보통 많이 걸리는 문제들이 아니다.협상.절충은 고사하고 관계 법령 손질만도 선거전에 마무리짓는다는게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지자체선거는 진실로 2년전의 여야(與野)합의대로,법에 정해진대로 실시할 생각이 확실한가.당론이 확 정된 것이라면 당내의 다른 얘기가 방관돼서는 안될 것이다.
***투명성 빨리 입증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임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부총리를 정치적 물의를 이유로 「해임」했다.문민정부의 의지(意志)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결단이라고 대변인은 설명했다.지자체 선거실시 문제를 둘러싸고 당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는 촌티나는 정치행태도 이제 그만두게 해야 한다.선거실시 의지가 불변이라면 그에 대한 투명성을 신속히 입증해야 할 것이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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