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한은도 금리 인하 검토해야 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그제 밤에 전격적으로 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해 급한 불은 껐다. 뉴욕 주가는 낙폭을 줄였고 아시아·유럽 증시는 반등했다. 주가 급락으로 손절매가 손절매를 부르고, 일시에 주식형 펀드에 환매가 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셈이다. 금융시장의 경색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미 당국의 단호한 의지가 일단 먹혀든 것이다.

하지만 FRB가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그것도 기습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그만큼 세계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지난해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4.1%나 됐다. 그런데도 FRB는 인플레 우려를 무릅쓰고 금리를 내렸다. 금융 불안이 실물경제에 전염되면 손쓰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한발 앞서 움직인 셈이다. 사실 물가 상승 속에서 경기마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한번 빠지면, 정책 대응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금리 인하는 만능은 아니다. 거품 붕괴라는 숙취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해장술을 마시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있다. 금리 인하는 치료제가 아닌 진통제 투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도 하기 전에 환자가 쇼크사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FRB에 이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금리 인하 채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상보다 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파장에 대응하려면 현실적으로 금리 인하 외에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를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우리 경제라고 세계 흐름과 따로 놀 수 없다. 한은도 최근 미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판단을 ‘낙관’에서 ‘우려’로 바꾼 바 있다. 선진국들이 선제적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어차피 한은은 물가안정과 글로벌 금융불안·경기침체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부동산값이 한참 오른 뒤에야 금리를 올렸던 치명적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금리를 조정할 때는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