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목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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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알고 지내는 중국인 중 드물게 ‘나무 닭’이란 뜻의 목계란 단어를 가슴속에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있다. 말 그대로 나무처럼 반응 없이, 민감한 일은 가능하면 무덤덤하게 넘기라는 뜻을 담고 있는 성어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기성자’라는 인물은 투계의 최고 전문가다. 주(周)나라 선왕이 투계를 무척 좋아해 싸움닭을 키우고 있었다. 왕의 부름을 받고 싸움닭 키우기에 나선 기성자는 느긋하기만 하다. 열흘이 지난 뒤 왕이 물었다. “닭은 다 키웠는가?” 기성자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자신의 실력만 믿고 오만한 상태니, 아직 멀었습니다.”

왕은 시간을 두고 계속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비슷했다. “다른 닭을 보고 이리저리 날뜁니다”라거나 “눈빛이 날카롭고 투지가 너무 넘칩니다”는 식이었다. 왕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참았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이제 됐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옆의 닭이 다가와도 눈길 한번 건네지 않고, 높은 소리로 울어대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기성자는 “바라볼 때 나무로 만든 닭과 같으니 그 덕(德)이 완전히 갖춰졌습니다. 다른 닭이 싸움을 건네다가 바로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싸움이 벌어지는 투계판에 나무처럼 반응없는 닭이라. 사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병법의 최고 차원을 말함이다. 원래의 고사처럼 목계라는 성어가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달하는 것을 일컬었지만 나중에 와 뜻은 다소 바뀌는 경우가 생긴다. 하도 많이 듣고 경험을 해 모든 일에 반응하지 않는 무관심의 경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아무 생각 없는 상태가 목계와 같다’는 새 버전으로 이 성어를 활용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또 결기를 보였다. 이명박 당선인의 정부 개편 방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앞서 자리를 차지한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보이는 예의로서는 고약하기 그지없는 경우다.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 늘 따라붙는 ‘몽니’라는 수식어가 신문 지상에 또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이에 반응할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늘 그래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것이겠지’라는 생각 말고는 더 스미는 감정이 없다. 한 달 남은 그의 임기가 어서 끝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 말고는 달리 기대도 없다. 그래도 어느덧 나무닭이 된 국민 마음에 어리는 생각 하나가 있으니. 지난 5년이 참 어지러운 시절이었음은 틀림없겠다고.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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