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베를린영화제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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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난 20일 막을 내린 제45회 베를린영화제는 전세계적으로 영화제심사의 기준이 다양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준 것으로 현지에서 평가받고 있다.
치열한 주제의식이나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영화보다는 일반인들이 보기 편하고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 최종심사결과 상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 분석이다.
한국영화 『태백산맥』은 개막당시 『분명한 주제의식과 작가혼이빛나는 영화로 진지한 세계관을 펼친 작품』이라는 참석자들의 평을 얻었으나 「길고 어렵다」는 이유로 수상에 실패했다.
개막초 통독이전 시대를 회고풍으로 그리면서 동.서독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독일영화 『약속』과 비교되면서 분단이라는 역사현실 속에서 인간군상의 서로 다른 반응을 그린 두 작품이 수상대결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불발에 그쳤다 .
행사장 주변에서는 『경쟁부문 출품작이 무려 25편이어서 심사위원들이 길고 깊이있는 영화를 충분히 소화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게다가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없는 미국출품작들이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가져간데 대해 『영화제 초반 미국영화수출협회 인사들이 방문하면서 압력을 행사한 듯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베를린영화제 예산은 2년단위로 市에서 지급하는데 지난해 받은예산이 물가상승으로 압박받자 미국영화계가 지원을 하고 갔을 것이라는 풍문이 독일기자단으로부터 흘러나온 것.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미국의 틴 타란티노 감독이 『펄프 픽션』으로 그랑프리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서 유럽의 주요영화제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영화계와 결합하는 경향이 이번 영화제에서도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영화제에 몰린 전세계 영화기자와 영화인들은 『이젠 영화제 시상결과보다 영화제 기간중 현지인의 반응이 더욱 큰 가치를 갖게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함께 그동안 세계영화제를 휩쓸던 중국계 영화들이 이번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상결과도 기대이하여서주목된다.단지 여우주연상과 우수시각디자인상에 그친 중국계 영화들의 시상실적에 대해 현지에서는 『10명의 심사 위원중 중국계가 2명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중국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퇴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영화제와 함께 열린 영화시장에서는 영화소국들의 다양한 영화가 출품돼 열띤 상담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그리스.라트비아.이스라엘.스위스.포르투갈.브라질등 연간 불과 2~10편 정도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는 국가들도 자국내 영화제작 자들이 비용을 갹출해 임시수출조합을 만들면서까지 작품을 팔고 있었다.그러나 한국만은 국내 업자들의 인식부족으로 빈약한 팸플릿과 비디오로만 한국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미래영상산업을 위한 전쟁에서 한걸음 뒤지고 있다는 씁쓸한 인상을 남겼 다.
물량면에서 세계 5~6위권인 한국영화가 이젠 국제무역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베를린=蔡仁澤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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