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 폐지 환영” … 올 재수생 늘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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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수능 등급제 폐지와 영어 수능 과목 제외를 주요 내용으로 한 새 정부의 대입 자율화 안이 22일 발표되자 학생·학부모·교사들은 술렁였다. 대입 자율 확대를 반기면서도 당장 어떻게 입시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올해 고3이 되는 황모군은 “고1 때부터 ‘등급제 수능’에 대비해 왔다”며 “특정 과목을 잘하기보다는 고르게 좋은 등급을 받도록 공부해 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선생님들이 ‘과목 편식’을 하지 말고 모든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도록 대비해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지도했다”며 “방향을 어떻게 틀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 중동고 2년 박모군은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비극보다는 실력대로 점수가 나오는 게 백번 낫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올해 딸이 중2가 되는 학부모 이경미(43·여)씨는 “딸이 대학 시험을 치르는 2013학년도에는 수능에서 영어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아이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 것이냐”며 불안해했다.

 신동원 휘문고 교사는 “2008학년도에 첫 등급제가 시행돼 전년도 입시 자료가 무용지물이 됐었다”며 “2009학년도에 등급제가 폐지된다니 학생 지도 방식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진학 지도에 있어 ‘2년간의 자료 공백’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기대 반 걱정 반=수능 영어시험 폐지가 가장 논란이 됐다. 문일고 김혜남(영어) 교사는 “문법·읽기 위주의 영어 교육이 크게 바뀔 것”이라며 “학교 현장도 의사소통력 위주의 실용 영어 교육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 사교육 시장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컸다. 주석훈 한영고 교사는 “대학마다 영어능력평가시험을 점수화해 지원 자격을 제한하면 초등생부터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점수를 맞추기 위해 여러 번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대학별로 자연계 전형에 영어능력평가시험 점수를 요구하지 않을 경우 학교 영어 교육이 황폐화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대형 입시학원 영어 강사 심모(38)씨는 “영어능력평가시험의 출제 방향이 문제”라며 “토플식 평가라면 어학원 시장은 커지고, 기존의 입시 영어 학원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탐구영역의 과목 수가 축소된다는 소식에 학생들은 반겼다. 서울 목일중 3학년 김모양은 “시험 과목이 줄어들면 책도 많이 읽을 수 있고 부담도 줄어들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과학 담당 교사들은 반발했다. 이상수(일반사회) 경복고 교사는 “대입과 관련 없는 과목은 수업 진행이 힘들다”며 “수업이 파행으로 진행돼 공교육이 망가질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S고 과학 담당 교사는 “학생들의 과학 실력이 계속 떨어지는데 수능시험에서도 홀대를 받으면 더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대 백순근(교육학과) 교수는 “대입 자율 확대를 통한 교육 선진화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대학들이 3단계 자율화에 따른 구체적인 입시 안을 빨리 내놔야 학생·학부모들의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 들썩=올 대입에서 수능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수생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이사는 “등급제에서 불이익을 받은 수험생들이 대거 재수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며 “실제로 대성학원에만 재수생이 3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영어능력평가시험이 기존의 텝스나 토플과 유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영어학원도 웃고 있다.

 서울 목동 H어학원 원장은 “시험에서 듣기·말하기 능력이 강조되면 어학 학원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대비한 강좌 준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반면 논술학원들은 상위권 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 논술을 폐지하겠다고 밝히자 업종 전환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노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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