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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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거울 앞에서 눈물을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제대로 사랑받아본 적이 없었음을 확인하는 눈물이었다.뒤늦은 만남이 난감하여 복받치는 눈물이기도 했다.
손 씻고 마음을 가라앉혀 화장실을 나섰다.
걱정스레 문 밖에 서있던 아리영 아버지가 싸안자 그 가슴의 성곽 안에서 길례는 힘없이 무너졌다.
아리영 아버지는 침대로 길례를 안고 갔다.
의식(儀式)이 시작되고 있었다.
침대 커버와 이불이 젖혀지고,새하얀 시트가 처녀설(處女雪)벌판처럼 펼쳐진다.
눈벌판에 뉘어진 길례는 「벗은 마야」다.
마야를 그린 고야의 손같이 아리영 아버지의 손길이 정성들여 길례의 육신을 그려 내려간다.
젖가슴을 둥글게 두르고,유두(乳頭)를 돋우고,단전(丹田)을 파고,숲 둔덕의 윤곽을 섬세하게 더듬어 나간다.
허리가 움직이고 낮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둔덕에서 늪가로 내려선다.
둔덕 기슭을 맴돌아 섬돌을 짚고 건너 기슭에 닿는다.다시 되돌아와 또 건너간다.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되풀이 훑어 돈다.
늪가에 물이 괸다.가슴 떨리고 감미한 시간이 전개된다.
길례는 애무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다.
남편은 으레 자신의 욕구만 채우기 바빴고,첫 남자였던 「선배」도 공들여 애는 썼으나 결국은 젊은이답게 성급했다.길례는 상대의 「절정」에 맞추어 산을 오르느라 늘 숨찼다.
때로는 산허리에도 미치지 않았는데 상대는 이미 산을 내려오고있었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담백한 부부생활에 길들여져온 셈이다. 섹스에 관한 고전적 리포트 「킨제이 보고」는 결혼한지 20년이 지나도 오르가슴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아내가 전체의 15퍼센트나 된다고 했다.
결혼 15년째의 경우는 19퍼센트,결혼 10년째 23퍼센트,5년째 29퍼센트,1년째는 무려 37퍼센트.
여기에 비하면 자기는 나은 편이라고 길례는 스스로 위안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몹시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곤했다.
남편이 정상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그렇다면 그 동반자인 아내가 정상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크게 균형잃은 일이 아닌가.
함께 나란히 정상을 누리기 위해 애무는 필요했던 것인데….
아리영 아버지의 손길이 늪으로 다가선다.엄지손뿌리로 늪을 가리며 힘준다.길례는 허리를 틀며 또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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