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줄테니 기술 넘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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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지난해 3월 중국 베이징의 국빈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의 연회장. GE의 9억달러 규모 발전기 수출계약 체결을 기념하는 자리였지만 GE 측 참석인사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중국 관리들의 요구로 중국 국내의 두 회사에 발전기 터빈 제조기술을 이전한다는 내용을 계약조건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측은 GE가 5억달러를 들여 개발한 최신 발전기 '9F'의 제조매뉴얼까지 통째로 중국 국영회사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중국이 자국 시장에 참여하는 해외 기업들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첨단기술 사냥에 나서고 있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AWSJ)이 26일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시장 대신 기술'이란 모토 아래 이동통신.반도체.의료.발전 등 첨단 산업분야에서 세계적 대기업들에 합작공장 설립 등 기술 이전을 필수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모토로라는 중국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하면서 중국 내에 현지 기술진을 위한 19개의 기술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데 3억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

MS도 1998년 베이징에 설립한 연구센터에 중국 연구진 200명을 고용한 데 이어 지난해엔 MS의 주력상품인 윈도의 소스코드 전체를 중국 정부에 넘겨줬다. 베이징 정부가 '안보상 이유'를 내세워 윈도 운영체제를 채택하는 대신 소스코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기술 방어를 철칙으로 지켜오던 GE.MS.모토로라.지멘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 앞에서만 무력한 것은 엄청난 규모의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전산업의 경우 미국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지만 중국시장은 연 1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신호(23일자)에서 "중국의 시장 성장 규모는 단순히 기술을 이전받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 기술표준을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은 3세대 이동통신 기술표준으로 미국의 퀄컴사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CDMA 2000이 아니라 TD-SCDMA(시분할동기식 부호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역시 독일 지멘스로부터 원천기술을 이전받아서다.

이동통신업계는 세계 최대 휴대전화 이용자를 보유한 중국이 3세대 기술표준을 확정하면 세계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의 기술사냥은 1960~70년대 미국의 선진 기술을 흡수해 기술대국으로 성장한 일본과 닮은꼴이라고 AWSJ는 덧붙였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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