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둘째 아이 교복 사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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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한달 전인 1991년 10월 20일 남편은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남편은 병원에서 한달 동안 깁스한 뒤 퇴원하였지만 웬일인지 남편은 엉뚱한 병으로 합병증이 생겨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병원에 다녀야 하고 머리맡에서 약봉지가 떨어질 날이 없다.

그래서 둘째 아이의 유년시절엔 나들이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다.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인가? 앨범을 정리할 일이 있었다.

그때 둘째 아이의 말

"엄마 왜 나는 사진이 없어요? 형아는 많이 있는데…." 할 말이 없었다.

남편 병수발에 온통 정신이 팔려 아이에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힘든 중에도 두 아이는 무사히 자라 이제 첫째는 중3, 둘째는 중1이 된다.

그래서 오늘 2004년 1월 15일 교복을 사기 위하여 남편과 같이 교복점에 갔다. 이것저것 보다 나중을 생각하여 아이보다는 좀 넉넉한 옷으로 골라 돈을 지불하고 커다란 옷가방을 받아들었다.

둘째는 어쨌든 새 교복을 입게 되어 무척 신이 나는듯 보았다.

옷가방을 들고 개천을 따라 네 식구가 같이 걸었다.

어느새 첫째 아이는 엄마보다 키가 훌쩍 커 있었다. 겨울 동안 얼었던 개울이 녹기 시작했다. 둥둥 떠다니는 얼음 위에서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난 듯 장난을 쳤다.

머지않아 봄이 오리라. 바람은 좀 차가웠지만 봄이 성큼 다가옴을 아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집에 온 아이는 바지 길이도 줄이지 않아 발에 밟히는 교복을 입곤 거울 앞에서 떠나지 못한다. 아이는 큰방에서 작은방으로, 작은방에서 큰방으로 한두 시간은 넉넉히 행진하였나 보다.

이젠 잠자리에 들어 곤하게 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본다. 아주 낮은 소리로.

"얘들아, 그동안 잘 자라 줘서 고맙구나. 가정이 넉넉지 못하여 잘 해 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 이젠 중학교에 다니게 되다니 정말 감사하구나."

늘 투정하지 아니하고 엄마와 아빠를 먼저 이해해주던 아이들, 정말 이 아이들이 우리 가정에 큰 기쁨이며 보배다.

얼어붙었던 개울이 녹아 흘러가듯이 늘 우리 가정도 부족하지만 주님의 축복 속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는 건강한 가정을 이뤄갈 것이다.

송상순(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3동.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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