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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행 ①

중앙일보

입력

설악에서 겨울의 절정을 발아래 두다

겨울의 설악산은 겨울산행과 겨울바다의 운치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1석2조의 명소로 꼽힌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오히려 많은 이들의 발길은 이곳으로 몰린다. 또한 그 풍광은 더할 나위가 없다.
금강산이 수려하기는 하되 웅장한 맛이 없고 지리산이 웅장하기는 하되 수려하지는 못한데 설악산은 웅장하면서도 수려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금강산을 밟지 못했던 시절에는 ‘설악이 있어 금강이 부럽지 않다’라는 말도 있었다. 죽순처럼 뾰족뾰족한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모습이나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비취처럼 맑은 물이 골짜기마다 못을 이루고 폭포를 이룬 모습을 보면 그 말이 그다지 지나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내가 1박2일이라는 짧은 강원도 기행을 준비하면서도 가장 먼저 ‘설악산’ 등반을 계획했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1965년 11월에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천연보호구역'으로 1970년 국내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설악산 일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생물의 분포서식지로서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한국유일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강원도로 향하기 전날 밤, 설악산에 대한 정보를 접할수록 더해가는 기대감에 마음은 이미 설악산 정상을 향해 종주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산행은 화를 부를 터. (그 밤 난 겨울철 무리한 산행을 주의하라는 기사를 쓰고 있었다.) 설악산은 첫 산행인 만큼 욕심내지 않고 풍광을 즐기며 쉬엄쉬엄 오를 수 있는 반나절 코스를 선택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에서 출발해 금강굴까지 3.6km 코스로 넉넉잡아 왕복 3시30분이 소요되는 코스다.

■ 소공원~신흥사~비선대~금강굴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서자 설악산의 중심 사찰인 신흥사(神興寺)가 나온다.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 (652년)에 자장율사가 세워 처음에는 향성사라 불렀다. 그 후 여러 차례 불에 탄 것을 조선 16대 인조 22년(1644년)에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惠元)의 세 스님이 유서 깊은 절이 폐허가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재건을 논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향성사 옛터 뒤의 소림암(小林庵)으로부터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삼재(三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 중 하나다. 국립공원에서는 ‘신흥사와 불교이야기’라는 해설탐방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신흥사에 들어가기 전 마주치게 되는 통일대불. 불상의 크기만큼이나 저마다 염원의 소리도 높다.

신흥사를 나와 금강교라는 다리를 지나자 바로 갈래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비선대를 향하는 사람들과 울산바위를 향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표지판을 따라 왼편으로 보이는 소나무 오솔길로 들어가면 비선대에 이르게 된다.
편편하게 이어진 길이 꼭 산책로를 걷는 편안한 기분이 든다. 100m 간격으로 감자떡이며 호박엿 등 군것질 거리들을 파는 아주머니들도 눈에 띈다. 가파르지 않는 산행 길에 아이 손잡고 나온 가족 등산객들이 많았다. 곳곳에는 아이들을 위한 생태 학습 표지판들이 세워져 있어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산행길이 아닐 수 없다. 국립공원에서는 연중 자연해설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었다. 홈페이지(http://seorak.knps.or.kr)를 보면 각 일정들이 나와 있으니 아이와 함께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솔길을 걷는 가족. 앞선 아빠가 엄마와 아이를 부르고 있다.

한참을 걷다 보면 땅의 냄새와 오솔길을 둘러싼 쌉싸래한 소나무향이 코를 타고 입안까지 채운다. 길을 따라 계곡이 이어지지만 겨울철 마른 물줄기에 큼직큼직한 돌들만 가득한다. 그런데 그 물이 없는 돌 계곡의 정취 또한 볼만하다. 마치 돌 병풍 같은 게 쓸쓸한 기운이 겨울날의 운치마저 풍긴다.
30분쯤 걸었을까? 흙길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부터는 곳곳에서 새어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오는데, 힘 있게 내딛는 등산객들의 발소리와 묘하게 화음을 이룬다.

늦은 오후, 산을 오르는 사람보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데군데 녹아내린 얼음 틈 사이로 투명한 물이 돌아 흐른다. 물빛이 어찌나 깨끗한지 살짝 손을 담그니 그 시린 기운에 머리카락까지 쭈뼛 설 정도다.

눈이 좋으면 소복하니 내려앉은 하얀 눈길을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이 없어도 산세를 즐기며 걷기에는 그만이다. 조금씩 숨이 가빠올 때쯤 저 멀리 반타원형으로 만들어진 목조다리가 보인다.

구름다리 아래로 흐르는 얇은 물줄기하며 옆으로 솟아오른 봉오리가 참으로 절경이다.

구름다리를 건너자 맞은편에 봉긋 솟아오른 두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아래 커다란 옥빛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비선대다. 전설에 의하면 비선대 아래에 있는 와선대(臥仙臺)에 누워서 경치를 감상하던 마고선(麻姑仙)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비선대라고 한다. 그만큼 빼어난 절경에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감상했다고 한다.

마고선녀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비선대

미리 따뜻한 녹차를 준비했다면 이쯤에서 한 잔 마시며 다리를 쉬어도 좋다. 여기서 마지막 목적지인 금강굴을 미리 떠올려 본다.
비선대 뒤 미륵봉(彌勒峰) 중턱에 뚫려있는 길이 18m의 자연 석굴을 금강굴이라 하는데, 일찍이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이곳에서 수도했었다고 전해 온다. 비선대에서 금강굴까지는 약600m. 하지만 가파른 돌길에 어느 길보다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쉬어가기를 여러 차례. 겨울 날씨임에도 이마에 땀이 맺힌다. 그렇게 30분을 오르니 저 멀리 산 중턱에 동굴이 하나 눈에 보이고 곧 이어 금강굴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빨간색 철교가 나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발 한발 내딛는데 가파른 암벽에 길게 걸쳐있는 다리 아래로 보이는 절벽들이 살짝 무서워져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새가 비경이다.

금강굴로 향하다.

금강굴의 마지막 관문, 붉은 철교.

‘이것이 설악이구나’
잠시 침묵해도 좋을 시간이다. 그 어떤 말로도, 그 어떤 사진으로도 이 풍광을 다 그려낼 수 없는 진짜 자연이 시야를 압도한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언제나 마음은 관대하게 일렁인다. 마음에 설악이 들어섰다.

금강굴에서 바라본 설악의 비경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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