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다이아몬드를 찾아라"… 아프리카 판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196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생. 인류학자이자 작가. 첫 소설이자 베스트셀러인 『차가운 피부』(2002년)가 ‘비평의 눈’(Ojo Crtico) 상을 수상하며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눈여겨 볼 작품으로 아프리카 독재자 8인의 희비극적인 실상을 다룬 인문서 『어릿광대들과 괴물들』(2000년) 등이 있다.

『콩고의 판도라』를 읽고 난 뒤의 충격 같은 여운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3000매 분량의 텍스트를 주어진 시간 내에 일독해야 하는 강박 때문만이 아니라, 첫 소설 『차가운 피부』(들녘, 2007년 국내 출간)와 비슷하면서도 분량이 더 길고 구성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아프리카 모험이야기가 느닷없이 스릴러 혹은 판타지로 변화되는 구성은 소설의 장르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모호하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20세기 초 영국. 톰슨은 부와 명성을 지닌 유명작가의 연재소설을 대신 써주며 밑바닥 생활을 영위하는 무명작가. 하루는 유명 변호사로부터 기이한 제안이 들어온다. 아프리카에서 영국 귀족의 자제인 크래버 형제를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질 가비를 위한 변론을 극적으로 써달라는 것. 그때부터 톰슨은 교도소로 찾아가서 가비가 크래버 형제와 함께 겪었던 아프리카 모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는데···.
 
사형수 가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경험담은 21세기 독자라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Pandora en el congo(콩고의 판도라)알베르트 산체스 피뇰(Albert S<00E1>nchez Piol) 지음Suma사, 423쪽, 14.35 유로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난 크래버 형제의 목적은 단 하나, 황금과 다이아몬드다. 그들은 무수한 유럽인들이 그랬듯이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고자 원주민들을 앞세워 광산을 개발하고 그 과정에서 무차별한 약탈과 살육을 일삼는다. 이쯤하면 유럽인의 시각에서는 미지의 아프리카 세계를 개척한 흥미진진한 모험소설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하는 리얼리즘 소설로도 불리는 데 손색이 없을 터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장르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 작품은 『차가운 피부』의 세계에서 경험한 기상천외한 판타지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차가운 피부』에서 현실세계를 등지고 무인도로 홀연히 떠난 기상관이 ‘괴물’을 만나 살아남기 위한 외로운 투쟁을 전개했다면, 가비와 크래버 형제는 콩고의 지하세계에 거주하는 ‘텍튼 족’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괴물이란 인간이 만난 낯선 인종에 불과하지만, 덕분에 독자는 남극의 무인도에 이어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가 지닌 경이로운 환상, 인간과 유사 인종 사이의 소통(애증) 앞에서 다시금 전율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두 작품의 유사성은 여기까지다. 작가는 마지막 부분에서 또 한 번의 장르변화를 꾀한다. 그것은 흔히 반전을 가져오는 ‘법정소설’로서의 전환으로, 독자를 경악시키는 결말로 이어진다. 작가 산체스 피뇰은 『차가운 피부』에서 바다에 거주하는 괴물을, 『콩고의 판도라』에서 지하에 거주하는 괴물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다음 작품에서는 천상에 사는 괴물을 그린다고 한다. 이른바 ‘개념적 3부작’이라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새로운 스페인 문학을 이끄는 작가가 올해 발표할 또 하나의 환상 장르가 기다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정창 <번역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