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1284년 ‘어린이 130명 실종사건’으로 본 유럽 중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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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아베 긴야 지음, 양억관 옮김
한길사, 272쪽, 1만2000원

“1284년 6월 26일 요한과 바울의 날 아침에, 남자는 골목길에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쥐가 아니라 네 살 이상의 아이들이 달려나왔다. 아이들은 남자를 따라 산으로 갔다가 그와 함께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었을까. 어린 시절 우리를 매혹시켰던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전설이다. 1971년 독일 괴팅겐의 주립문서관에서 중세 고문서와 씨름하던 한 중세학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쥐사냥꾼’ 기록을 접하고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사실을 더 발견하게 된다. 1284년 130명의 어린이 실종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피리부는 사나이는 누구였을까?
 
이같은 소박한 호기심만으로도 중세는 여행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온갖 고문서를 추적하는 지은이를 따라가 보면 그 이상의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다.

피터 브뢰겔, ‘아이들의 놀이 (1560)’중 부분

그동안 ‘피리부는 사나이’에 ‘홀린’ 학자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400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이미 수 십 가지의 이론이 나왔다. 어린이 실종 원인에 대해서도 이들이 십자군으로 소집됐다는 설부터 12~13세기에 서유럽에서 빈발한 동부로의 이주설까지 해석도 다양하다. ‘피리부는 사나이’는 귀족의 부탁을 받은 ‘식민청부인’이었고,그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이끌어 헝가리의 한 주교가 개발한 식민영지로 데려갔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지은이는 평생을 중세 연구에 바친 학자답게 전설의 갈피 속에 숨쉬고 있는 사람의 역사에 빛을 비춘다. 신분 차이로 차별받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은 장미빛 나라에서 살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을 본다. 그곳에서‘피리부는 사나이’는 그들의 고통과 두려움, 꿈을 투영한 대상이었다.

아베 긴야는 독일 중세사에 정통한 학자로 특히 역사학에서 소외되온 서민들의 삶에 애착이 많다. 이 책과 동시에 출간된 『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한길사)에서도 그는 목로주점 주인·제분업자·목욕탕 주인 등의 일상을 통해 중세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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