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패션도 자유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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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남자들이 달라지고 있다.차림새의 보수성이 유독 두드러진 한국남성 패션이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자유화.주5일 근무제.
국제화등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어깨패드가 없는 헐렁하고 편안한 재킷에 엷은 분홍.녹색의 실크 남방,밋밋한 판탈롱바지,여기에 긴 펜던트를 늘어뜨린 목걸이까지.언뜻보면 여성복인지 남성복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구속받기 싫어하고 개성이 강한 신세대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사회에 진출,자리를 굳힌 30~40대에서도 패션의 물결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다.흰색 셔츠에 페이즐리무늬 넥타이,감색이나 회색슈트로 대변되던 신사정장도 달라지고 있다.
넥타이대신 스카프를 두르고 3~4버튼의 복고풍 재킷을 입는가하면 블레이저나 캐주얼정장을 이용한 세퍼레이트룩(각기 다른 색상과 문양의 상.하의를 코디한 옷입기방식)이 요즘 부쩍 눈에 띄는 비즈니스맨의 차림이 되고 있다.
연한 분홍.상아색.녹색.연보라등의 컬러셔츠는 물론 몸판과 칼라의 색상이 다른 것,캐주얼한 느낌을 살려주는 버튼다운 칼라,둥근 칼라,탭칼라등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마.모피.가죽.니트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조끼(일명 베스트)가 옷맵시를 살려주는 액센트로 남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남성복의 캐주얼화가 진전되면서 점차 정장과 캐주얼의 한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올해 입사 3년째를 맞는 회사원 조헌식(趙憲植.30)씨.그는청바지에 버튼다운칼라가 달린 컬러셔츠,여기에 감색 또는 붉은 기가 도는 주홍색 블레이저를 즐겨입는다.
『격식을 차려 일을 처리해야 할때는 여기에 넥타이만 맨다』는그는 이런 복장이 업무뿐만 아니라 퇴근후 모임,주말외출복등으로다양하게 입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교복자율화로 패션감각을 익힌 10대 후반~20대 초반 X세대의 옷입기 센스는 이미 기성세대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원피스에 가까운 긴 셔츠를 무리없이 소화해내는가 하면 목걸이.반지는 물론 귀걸이까지「자신과 어울리는 것」이면 무엇이든 취하는 뛰어난 코디감각을 지니고 있다.심지어 여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스커트까지 등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서태지와 아이들.김원준등의 가수가 처음 입고나와 일반에 선보이기 시작한 남성용 랩스커트는 이미 진전문브랜드 닉스(NIX)가 지난 추동시즌에 1천벌을 생산,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이너 임태영(쉬퐁)씨는 지난 가을 발표한 95 춘하 서울컬렉션에서 바지위에 덧입는 랩스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남성 소비자의 기호변화는 기존 남성복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정통신사복을 주로 생산하던 신사정장 5대업체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진 반면「패션성」을 가미한 파브리지오.인터메조.가이스클럽.코모도.워모등의 후발 브랜드가 급상승,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쉬퐁.카루소.이신우옴므.솔리드옴드등「독창적인 디자인」을 내세우는 디자이너브랜드까지 가세,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남성복의 패션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반도패션의 정영한(鄭煐翰)신사복부장은『88년 이전만해도 신사복 시장의 70%가량을 석권하던 5대 신사정장업체의 점유율이 최근들어서는 50%이하로 떨어졌다』며 『그동안 늘어난 시장규모를 감안한다면 실제로 이들이 빼앗긴 시장은 훨씬 큰것』이라고 분석했다.
패션백화점으로의 차별화를 선언한 갤러리아백화점은 아예 신사정장브랜드를 하나도 입점시키지 않고 있는 경우.권재혁(權在赫)신사의류팀장은『이들 캐릭터 캐주얼이 매시즌 30~40%의 높은 판매성장률을 보이는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李貞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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