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있는 세누이가 이쌀로 밥지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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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어제 中央日報에 실린 두가지 뉴스를 보고 큰 슬픔을 느꼈다. 1면 머리기사에서 자선단체인 국제 기독교선명회가 북한에30만t의 양곡을 보낸다는 보도를 보고 북한에 남아있는 나의 세 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싱숭생숭 하던 마음은 바로 옆에 실린 한장의 사진,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러시아 우주정거장이 지구에서 수천㎞나 떨어진 우주상공에서 랑데부하는 그 사진을 보고 어찌할 수 없는 슬픔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누가 뭐래도 한반도의 분단에 궁극적 책임을 질수밖에 없는 두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붕괴했음을 세계에 공표라도 하듯 우주상공에서 만나 희희낙락하는데 우리는 자동차로 한시간이면 달려갈 지척에 있는 우리의 핏줄들을 만나지 못한채 이토록 가슴 저미며 살아가야 하다니….
슬픔을 추스르고 생각해 본다.북한의 우리 형제들이 남쪽의 곡창지대에서 나온 쌀로 밥을 해먹는 광경을.
그 가운데 황해도 안악 고향에 두고온 세누이가 포함돼 있다면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그들은 누군가의 어머니.아버 지.형제들일 것 아닌가.
북쪽에서는 남한쌀에 대한 보답으로 샘물과 목재등을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좋은 일이다.
『굶어죽어도 너희가 보낸 것을 받지 않겠다』『우린 수입해서 쓰면된다』던 그 어리석기만한 오기와 자존심이 한풀 꺾인듯 하기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남북은 교역과 원조를 모두 서로의 체제우월성을 선전하려는 냉전적 대결의 한 수단으로만 이용해 왔다.
사생결단하고 체제경쟁에 매달린 상황에서 순수한 경제논리는 뒷전으로 사라지고 인도주의마저도 의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최근 남북의 경제협력이 비록 탐색수준일망정 여러 채널로 교감되고 국제기독교선명회의 양곡기증 제의를 북한이 수용할 자세를 보인건 양국관계의 새로운 싹을 보는 것 같아 실향민의 한사람으로서 반갑기만 하다.
30만t의 양곡이라면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북한주민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차원의 주고받기가 아니라도 이번 교류는 경색된 남북관계에하나의 장을 열게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북측의 태도가 가장 문제겠지만 남쪽에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 정부에 대해 바라고 싶은 것이 많다.
만일 정부가 만의 하나라도 남한쌀이 북한에 들어가 북한주민들사이에서 남한에 대한 동경이나 체제에 대한 동요가 일어나길 바란다면 그건 진정한 인도주의도 아니고 남북관계 개선에도 아무런도움이 안된다.
따라서 아무런 조건없이 그냥 기증하길 당부한다.
국가간 관계에 있어 목적이 없을 수 없고 감정을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요구되는건 우리쪽의 어른다운 자세,긴 훗날을 볼수있는 안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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