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으며생각하며>16.농촌진흥청 감자박사 金剛權 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토요일 늦은 오후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정문에 도착,택시에서 내려 넓은 경내를 가로질러 농업과학기술원 건물을 향해 걸었다.오른 쪽은 서호다.가뭄에 물이 줄어서 보통 때보다 조그맣게보인다.청둥오리 한 떼가 여기를 베이스 캠프로 삼아 겨울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다.석양 속의 그들이 남 같지 않고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김강권(金剛權.56)박사는 이 연구원 원장이다.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공부한 끝에 고등식물 세포핵 속에 있는 仁(nucleolus)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그는 인(仁)이라는 한자(漢字)가 사람 둘 을 의미한다는 동양 철학적 해석에 어지간히 매료되었다고 말한다.
『저는 농사와 관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서울서 났고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우연히 수원에 한 번 놀러 왔다가 농대(農大)에 끌린 점도 있지만 그당시 저희 학교 교장선생님이학교의 명예를 높이겠다는 경쟁심에서 무엇을 전공하 든 무조건 서울대학교에만 많이 입학시켜 놓고 보자는 생각을 가졌던 분이라그 영향도 많이 받았던 거죠.고3때 담임선생님이 육인수(陸寅修)씨라고,나중에 대통령 영부인이 된 육영수(陸英修)여사와 남매간이었는데 제가 서울대 농대를 지원하 겠다고 하니까 수석합격을하라고 하면서 아주 좋아하시더군요.대학 재학중에 군대 복무를 끝내고 64년에 졸업했습니다.졸업을 막상 앞두고 나서야 농사를지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金박사는 자기의 인생 역정에운명이 새겨 넣어 준 유머러스한 모자이크를 발견해 내고 그것을즐거운 눈으로 바라 볼 줄 아는 사람인것 같다.어떤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시간을 너무 잘디 잘게 썰어 놓고는 그 한토막한토막에 조바심 을 태운다.그 세분된 한 토막이 좋은 것이면 으스대고 나쁜 것이면 기가 죽는다.농민의 자식으로 태어 났으니농과대학을 지원했다는 것보다는 어쩌다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농사를 지을 결심이 서더라는 쪽이 좀 더 곡절도 느껴지고 큼 지막하게 들린다.그는 환경과 마음,둘 가운데 마음은 진정한농사꾼의 그것을 타고 났던 것이 아닐까.
『서울 근처에서는 돈 벌이가 될만한 농사거리가 없다는 생각이들길래 교수님 한 분께 상의를 드렸지요.그 교수님이 단경기(端境期)채소인 양파를 해보라고 하면서 대관령 산꼭대기에 있는 고랭지 시험장에 소개를 해 주셨어요.정식직원도 못 되고 일용잡급보조원 자리를,그것도 시험을 쳐서 합격하고서야 얻었습니다.』 1년후 정식 직원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그는 자영 농사꾼이 되겠다는 꿈에서 밀려나 공무원이 되고 만다.양파를 전공하려던 것도 무산되어 감자 전문가가 되어 갔다.
『대관령 고랭지 시험장은 그 유명한 우장춘(禹長春)박사가 골라 준 곳이었습니다.그분이 하신 위대한 일 참 많습니다.일본서귀국해서 한국도 채소종자는 자급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걸 실현시켰습니다.거기다가 감자 종서를 생산할 후보지 도 마련했던 것입니다.당시의 崔장장(場長)은 禹박사 밑에서 동래서부터 연구하던 분으로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습니다.제가 그분 눈에 들었던가 봐요.아주 중요한 일은 모두 저를 시켰습니다.씨감자 생산이란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평지에서 는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감자의 교배 익종은 아마 그때 처음 시작했던 거로 봅니다.』 金박사는 67년에 동서문화센터 장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여 하와이대학교로 유학을 갔다.당시 미국으로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가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다.얼마나 쟁쟁한 사람만 합격되었던지 지금도 그 사람들은 하와이 마피아라는별명으 로 불릴 지경이다.원래는 석사과정 까지만을 위한 2년이기한이었다.金박사는 崔장장이 시킨대로 사가와 교수 밑에서 양란의 조직배양연구를 했다.지금과는 달라서 조직배양이란 것은 국내에서는 그때까지 듣지도 못한 말이었다.
『제가 우연히 하와이 양란협회가 가장 품종이 좋다던 蘭을 조직배양을 통해 대량 증식하는데 성공 했습니다.무슨 기술을 발휘한 것도 아닌데 하다보니 그냥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사가와 교수는 그 바람에 저한테 완전히 혹해서 박사과정을 위한 전액 장학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하지만 저는 공무원신분이라 지시에 따라 귀국하여 일단 대관령으로 돌아가 다시 씨감자 연구에 들어갔지요.』 金박사는 한때 국내에서 양란 조직배양을 하여 큰 돈을 벌어 보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저희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점을 치러 가시곤 했습니다.돈을 버느냐,연구생활을 계속할 것이냐를 놓고 어머니께 어디 가서 좀 물어 보아 달라고 말씀 드렸지요.사주 보는 사람이「이사람은 공부를 해야 된다,돈하고는 인연이 없다, 게다가 역마살이 끼었으니 외국 나가서 공부할 팔자다」하더랍니다.마침 사가와교수가 농업진흥청장 앞으로 정식으로 제 유학 초청장을 보내 줘다시 미국으로 갔지요.거기서 결혼도 하게 되었고.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은 제가 仁에 너무 거창한 관심을 가지고 하다보니 도리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맹탕을 만들고 말았다고나 할까요.사가와교수께도 실망을 드리고….제가 仁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그것이 세포와 세포 사이에 어떤 조정이나 협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데에 있었 습니다만.』 박사학위를 끝내고 돌아와서 그는 다시 감자 연구로 돌아간다.이번에는 평지의 난(暖)지대 감자생산 연구였다.감자꽃에서 열리는 이른바 진정종자를 직접 파종하는 연구에 들어갔다.유엔 산하의 국제감자연구소도 여러번 사람을 보내어 金박사 팀의 한국의 감자연구 성과를 배워갔다.한국의수준이 그들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金박사도 여러차례그 쪽으로 초청되어 가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감자의 진정종자 직접 파종은 안 되더군요.실험실에서는 곱게 다루니까 되는데 농가에서 해보면 안 되거든요.외국사람들도 우리가 하는 것을 와서 보고 깜짝 놀라곤 했는데…,결국 이 일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단지 추작(秋作) 감자를 정착 시키는데는 어느 정도 제노력이 보탬이 되었던것 같기도 합니다만.』 우리나라에는 11개의 농업연구기관이 있다.그 가운데서金박사가 원장으로 있는 농업과학기술원이 가장 크고 연구시설도 좋다.겸손한 과학자인 그에게 한국 농업의 장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진국에 한수 위 ……● 『농업과 농촌이 어렵기는 농업 대국들도 마찬가지입니다.어느 나라에서나 농업은 다른 산업에 밀리고 있습니다.이 점을 첫째로 염두에 둬야겠지요.그 다음으로는 선진국에서는 농업.농촌에 대한 개념이 이미 바뀌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바뀌어 져야 한다는 점입니다.농업을 생산 자체 보다는 국민 전체에게 높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원천으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 이르러서 그가 박사 학위 논문 테마로 세포핵의 仁을 잡았던 것이 그의 오늘날 농업.농촌관과 관련이 없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仁」이 두 세포 사이의 조정 역할을 한다고 믿어 그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은 그가 어 떤 갈등적인「둘」사이의「조정역할」에 각별한 관심이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그는 이제부터 농업은 자연과 인간,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사이의 조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리라.
『농업.농촌이 국민 전체의 높은 질의 삶의 원천이란 말은 농업이 먹어서 안전하고 값이 적절한 농산물을 공급하는것 외에 국토의 자연 환경을 보호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역할을 겸하는 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뜻합니다.전통 문화라는 것이 어차피도시적인 것일수는 없지 않습니까.「지속 가능한 농업」이란 말도많이 쓰고 있는데 경쟁력 뿐만 아니라 국토유지 측면이 강조되어야 계속해서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농업이 됩니다.
선진국에서는 농업이 인구나 GNP에서 겨우 2~3% 수준에 불과합니다.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그렇기때문에 오히려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측면에서 농업.농촌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공장식 자본집약적 첨단 농 업은 대기업에 맡기면 되겠지요.저 자신은 그 쪽에는 포인트를 두지 않겠습니다. ***●…… 벼 무시해선 안돼 ……● 우리나라 농업을 네덜란드 처럼 만들자는데는 무리가 있습니다.우리나라 농업은 그런대로 이상적으로 발전해 온 것입니다.수출할 수 있는 것은 그것대로 힘을 쏟아야 하겠지만 우리가 무시해서는 안 될것은 첫째로 벼,그 다음에는 맥류.콩등 기간작물입니다.경쟁력 측면만이 농업을 좌우해서는「지속 가능한 농업」이 될 수가 없습니다.삶의공간으로서의 농업은 생산성보다는 품질과 안전성 쪽에 더 치중해나가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 농산품의 품질과 안전성,그리고 생산성을올리는 것은 농민을 의타성(依他性)속에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 더욱 중요해집니다.유기농업,사료와 축산비료의 순환,생태적 방제(防除)기능 이용,종자개량등 농업의 전반적 관리 기술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제가 젊었을 때와는 달리 진급등 인센티브가 사라져 연구직.지도직 농업 공무원들의 사기가 아주 떨어져 있다는 것은 앞으로 이런 농업을 만들어나가는데 큰 애로가 되고 있습니다.』 대담을 끝내고 우리는 소주 한잔을 돼지갈비 안주로 수원역앞 대포집에서 나누었다.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농업이 경제만이 아닌 국민의 전반적 생활임을 내게 가르쳐 준 그가 고마웠다.농업.농촌에 대한 투자는 이제부터 자연과 전통문화 ,이 두 최고의 사회간접자본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