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극 "콘트라베이스" 명계남 연기력 볼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한탕주의.상업주의가 판치는 대학로 연극가에 불혹을 넘긴 30년지기 「연극쟁이」 두 사람이 모여 조용한 혁명을 준비중이다.그것은 저질 상업극에 몰려 질식 직전인 순수 연극을 지키는 작업이다.이제는 순수 연극이란 용어가 어색하게 들리는 한국연극의 현실을 개탄하며 던지는 이들의 출사표는 「진짜 작품과 진짜 관객의 만남」이다.
「돌아온 명배우」 명계남(42)과 「강태공 연출자」 김태수(43)가 오는 4일부터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무대에 올리는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그것.독일의 은둔작가 파트릭 쥐스킨트 원작의 이 연극에는 요즘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기인이나 대중스타는 나오지 않는다.걸직한 육담(肉談)이나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려는 섹스도 코미디도 없다.왜소한 체구의 볼품없는남자배우 한명,그리고 무대 위의 콘트라베이스와 그들을 감싸고 흐르는 음악 한줄기.이것이 출연진의 전부다.
마흔 넘은 나이에 잘나가는 광고회사를 뛰쳐나와 지난해 10년만에 다시 연극판에 뛰어들은 배우 명계남씨.그간 『그섬에 가고싶다』등 몇차례의 영화와 연극 『불좀 꺼주세요』등에서 출연으로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지금 이 작품을 통해 자신 의 인생 모두를 보여주겠다는 의욕에 차있다.
배우 명씨와 고교.대학 친구인 연출가 김씨는 10년 전 이들두사람이 주축이 돼서 만든 극단 완자무늬를 통해 『팽』 『금관의 예수』등 문제작을 내놓다 90년대 들어 한국연극의 저질화에염증을 느껴 거의 모든 연극작업에서 손을 떼고 주로 타극단의 뒷바라지만을 해온 인물.연극지기 명씨의 복귀로 그는 백만대군을얻은 장수처럼 힘을 내고 있다.
『공연시간만 두 시간이 넘고 대사만 6만자 분량입니다.배우 한사람이 하는 대사로는 사상 최장일 겁니다.볼거리만 찾는 뜨내기 관객에게는 부담스러운 작품이죠.』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별볼일 없는 한 남자의 얘기를 그린 『콘트라베이스』는 이들 두사람의 고독한 연극작업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작품.자신의 악기와 연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한명 있다.그러나 남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콘트라베이스는 언제나다른 악기들을 그늘에서 받쳐주기만 할 뿐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먼,시시하고 초라한 삶이다.그는 결코 스타가 될 수 없다.
스타의 그림자일 뿐.어느날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혼자만의음모를 하나 준비한다.음모의 내용은 대통령이 관람하는 연주회 도중 벌떡 일어나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외치겠다는 것.연극은여기서 막을 내린다.음모의 실현 여부는 물음표로 남겨둔 채.『뮤지컬이다 섹스 코미디다 하면서 관객끌기에만 혈안이 된 듯한 연극판에 쟁이의 혼이 살아있는 소품 하나를 올려보자는 게 공연의도』라고 힘주어 말한 배우 명씨는 『3천만원 정도 든 제작비건질 생각은 처음부터 포기』라며 연습장에 덩그라니 놓인 콘트라베이스의 현을 다시 잡아간다.
李正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