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빨래터’ 제대로 된 과학감정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최명윤 교수는 지난해 4월 X선형광분석기(XRF)를 이용해 이중섭의 위작을 분석했다. 그림에 사용된 안료의 금속성분의 파장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80년대 개발된 안료인 산화티탄피복운모가 검출됐다. [사진=최명윤 교수 제공]

“‘빨래터’의 진위 여부를 떠나 과학감정 종사자로서 이번 감정에서 제대로 된 과학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과학감정 전문가인 명지대 최명윤(61·사진·문화재보존관리학)교수의 얘기다. 그는 1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술품 감정도 이제 확실한 근거와 증거 위주로 말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국내 최고가 경매 낙찰품인 고 박수근 화백의 작품 ‘빨래터’의 진위논란과 관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지난 9일 “출처확인·안목감정·과학감정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진품으로 판정했다”고 밝혔다.

이 중 과학감정 결과 ▶ 캔버스 가장자리에서 박수근 특유의 카키색 밑칠을 확인했다 ▶ 그림에 균열이 관찰돼 상당 시간 경과했음을 알 수 있다 ▶ 탄소 동위원소 반감기를 이용한 연대 추정은 오차 범위가 50년 정도라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밑칠이나 균열은 눈으로 확인하는 안목감정 수준”이라며 “감정연구소의 두 차례 감정에서 과학감정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림의 과학적 감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최 교수는 일단 그림의 겉틀인 액자, 속틀인 캔버스틀의 나무를 이용한 탄소연대측정을 제안했다. 그는 “오차 범위는 연구소의 주장과 달리 5∼10년 이내”라고 말했다.

 둘째, 그림 속 흰색도 단서다. 흰 물감은 가장 많이 변화한 안료다. 그는 “특히 67년엔 유화 작품이 갈라지고 부스러지고 누렇게 변하는 원인이 되는 성분이 흰 물감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흰 물감의 성분이 대대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동식 X선형광분석기를 그림의 흰 부분에 쬐면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도 안료의 금속 성분들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분석된 성분이 50년대에 존재한 것들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액자의 흰칠에 사용된 물감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옥션측은 지난해 5월 경매에서 “소장자는 박수근이 이 작품을 전달하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액자틀에 흰색을 칠했다”고 밝혔다. 이 흰 물감이 이번에 감정연구소에서 추정한 제작연대인 ‘1956년 혹은 그 이전’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당시 이 작품을 경매에 내놓은 존 릭씨는 이번에 감정연구소측과의 전화통화에서 “액자의 흰색은 딸이 칠한 것”이라고 정정했다.

 이와 함께 “적외선 분광기를 이용하면 안료를 캔버스에 붙게 하는 기름, 아라비아검 등 유기물 접착 성분의 특성을 파악해 연대 추정의 자료를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검찰서 이중섭·박수근의 위작 수천점을 과학감정을 통해 밝히는 과정에서 최 교수는 ▶ 그림에서 84년 이후 개발된 안료인 산화티탄피복운모가 검출 ▶ 이중섭 위작에 사용된 종이의 연대는 57년, 즉 이중섭의 사망 후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었다. 그는 “과학감정을 통해 당시 사용된 재료들로 그린 그림임이 판명되야 누구나 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최명윤 교수는 지난해 검찰서 이중섭·박수근 대규모 위작 사건을 밝혀낸 과학감정 및 문화재 보존관리 전문가다. 2006년 『미술품의 안목감정과 과학감정 접목』이란 과학감정 교육자료를 내기도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