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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에너지자원의 국제정치, 한국은 어디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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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많은 사람이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가 적용되는 경제상품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적인 사고일 뿐, 사실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정치적인 안보 상품은 없다. 특히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시대에 우리같이 자원 없는 국가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는 석유나 가스 등 에너지자원 확보에 대한 중장기 외교 전략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주요 국제정치 사건의 배후에는 석유 확보 경쟁이라는 요인이 작동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미·소 냉전 대결에서 미국의 중요한 외교 목표 중 하나는 중동 산유국들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걸프 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중요 원인 중 하나는 쿠웨이트의 석유자원이 이라크 수중에 들어갈 경우 서방으로의 안정적인 석유 공급이 부정적으로 영향받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중국을 “책임 있는 이해당사국(responsible stakeholder)”이라고 부르면서 대중 포용을 표방한 졸릭 국무부 부장관의 2005년 9월 연설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공격적 에너지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은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통해 국내정치적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려 하고, 이를 위해 에너지자원 확보에 사활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인권·비확산 문제 등으로 미국의 제재를 받는 수단·미얀마·이란뿐 아니라 중동·아프리카·중남미 도처에서 미국과 부딪치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중국은 만약 대만과의 비상사태가 전개될 경우, 미국이 믈라카해협을 장악하고 중동으로부터의 석유수송로를 차단할 가능성을 내심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해상 수송이 아닌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로부터의 육상 수송로 개발에도 열을 올렸다.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유전으로부터 중국 내륙을 향해 동쪽으로, 그리고 동시베리아의 타이세트로부터 헤이룽장성 다칭으로 석유를 수송해오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가 않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터키를 통해 석유를 유럽 쪽으로 수송해 내기 원하는 미국뿐 아니라 북쪽으로 수송해 내는 파이프라인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러시아와 부딪치고 있다. 동시베리아로부터의 파이프라인 건설도 건설비까지 다 대주겠다면서 태평양 연안 나홋카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자는 일본과 경쟁해 왔다. 양 지역에서 중국의 에너지 확보가 원활하지 못하면 이는 동중국해에서 일본, 남중국해에서 아세안 국가들과 더욱 갈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편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세계 GDP의 6분의 1을 생산하고 있는 일본·한국·대만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기에 중동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이것이 긴밀한 중동-동북아 협력의 축을 형성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동북아의 다자간 에너지 협력의 필요성을 권유하고 있다.

동북아 다자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물론 한국에는 상당히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중국·일본은 독자적인 능력과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는 대국들이기에 다자협력에 쉽게 나서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막연히 이상적인 주장에만 집착하면서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냉철한 현실주의 관점에서 체계적인 우리 나름의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중 하나가 북한을 통과하는 연해주로부터의 파이프라인 건설일 수도 있다. 물론 핵문제가 장애요인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자세로 논의의 물꼬를 터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용노선으로 변한 것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약력 : 서울대 외교학과 졸,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외교통상부 장관, 미래전략연구원 상임고문,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서울대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