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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뜨거워지는 美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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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11면

AP= 연합뉴스

2009년 1월 20일 백악관의 새 주인을 놓고 미국의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공화·민주 양당의 경쟁 속에 사회당·사회노동당·녹색당· 금주당(禁酒黨) 후보도 나서고 있다.

1승 1패의 男과女… 코드는 “변화”

그러나 제44대 미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 아니면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선거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공화·민주당 간 정권교체 주기를 감안하면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 후보를 점찍는 쪽이 많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간의 2강 구도로 압축되고 있다. 오바마는 아이오와 당원대회(3일)에서 38% 대 29%로 승리했다. 수세에 몰린 힐러리는 뉴햄프셔 예비선거(8일)에서 39% 대 36%로 신승했다. 일반 당원이 뽑는 대의원 숫자에서는 아직 오바마가 1명 더 많다. 그러나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 ‘수퍼 대의원(superdelegate)’으로 불리는 당직자 대의원 숫자에서는 힐러리가 앞서고 있다.
민주당 경선의 핵심은 ‘변화’다. 정권교체라는 변화, 여성 혹은 흑인 대통령의 집권이라는 변화, 오바마가 주창하는 ‘통합과 희망의 정치’ 등은 한결같이 변화의 코드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힐러리와 오바마의 변화 코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상원의원인 두 사람이 상원에서 각종 법률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때 큰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선거공약도 총론은 비슷하고 각론이 약간 다르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철학적 바탕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오바마는 ‘공동체주의자(communi-tarian)’다. 20세기 말 등장한 공동체주의는 개인보다 공동체나 사회의 이익을 중시한다. 오바마와 지지자들은 워싱턴의 정당정치 때문에 미국이 여러 갈래로 찢긴 나라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한다.

오바마의 경제정책 바탕에는 인간 심리를 중시하는 행동주의 경제학이 깔려 있다. 외교정책상으로는 전략적 차원에서 새 틀을 짜려고 한다.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거물급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도 국제정치의 재편 필요성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힐러리도 당파성을 초월한 전략을 잘 구사한다. 남편인 빌 클린턴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3각 측량(triangulation)’ 전략과 정책을 구사해 성공을 거뒀다. 힐러리는 전략보다 전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의 효과를 믿는다. 중산층의 고달픈 삶을 변화 시키겠다고 다짐한다.

지난 두 차례 투표에서 두 사람은 1승1패를 기록했다. 이제 오바마는 그럴듯하게 보인
다. 비록 졌지만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출구조사에서 유권자들은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오바마 46%, 힐러리가 35%라고 응답했다. 2004년 대선의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의 지지도 얻었다.

힐러리는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았다. 연설은 짧게 하고 감정을 적절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여 동정표를 얻었다. TV에선 끊임없이 이 장면을 방송했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남성 동료들이 “힐러리는 이제 끝났군” 하는 비아냥을 들었다. 이들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을 느꼈고 “미국에서 가장 높고도 단단한 유리 천장은 여성차별”이라는 힐러리의 주장에 공감했다. 그 결과 뉴햄프셔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점친 9개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을 뒤집었다.

두 사람에겐 숙제가 남아 있다. 유명 정치평론가 로버트 노박은 힐러리의 눈물을 “순진한 사람이나 믿을 것”이라며 진실성을 의심했다. 힐러리에게는 아직 견고한 ‘안티’ 세력이 있다. 지난해 12월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에게 부정적인 응답을 한 유권자는 50%였다. 오바마는 33%인 데 비해 높은 수치다.

오바마의 고민도 적지 않다. 힐러리 지지자는 지금 당장 살기 힘든 사람들인 반면 오바마 지지자는 경제적으로 크게 아쉬운 게 없는 계층이라는 게 출구조사 결과 밝혀졌다. 국민통합을 내세우며 선거전략상의 포지셔닝(positioning·위치 설정)을 가장 넓게 잡은 오바마는 앞으로 구체적인 정책들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19일 네바다, 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이 기다리고 있다. 두 곳의 경선은 2월 5일 캘리포니아·뉴욕·일리노이 등 23개 주에서 동시에 코커스·프라이머리가 열릴 ‘수퍼 화요일’의 전초전이다.

유권자의 성격도 달라진다. 여성차별 문제가 불과 닷새 만에 미묘하게 정치 쟁점으로 부상한 뉴햄프셔처럼 이번에는 인종문제가 정치화될 수 있다. 네바다주의 히스패닉계 비율은 20%다. 9일 요리사노조(회원 6만 명)와 국제서비스노조 네바다지부(회원 1만7500명)가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힐러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수가 히스패닉계인 노조원들을 일대일로 공략하고 있다. 10일 경선을 포기한 히스패닉계 빌 리처드슨은 아직 누구의 지지도 선언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히스패닉계 대상 여론조사에 따르면 60%가 힐러리 지지, 10%는 오바마 지지다. 게다가 네바다는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여파를 낳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희생자가 많은 곳이다. 양측 모두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민주당의 유권자 절반 이상은 흑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오바마에게 꼭 유리한 것은 아니다. 흑인 유권자들은 아버지가 케냐 사람인 오바마가 과연 ‘진정한’ 흑인인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흑인들은 미국 최초의 ‘사실상 흑인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그 부인 힐러리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조사에서는 52% 대 33%로 힐러리가 우세했으나 12월에는 45% 대 46%, 박빙으로 바뀌었다. 최근 상승세만 감안하면 오바마가 이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를 위해 똘똘 뭉칠 경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선거에도 ‘한 방’이나 ‘바람’에 해당하는 ‘10월의 충격(October Surprise)’이라는 게 있다. 대선후보들이 뭔가 큰 것을 11월 초 있는 선거 직전에 터트리는 것을 말한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거의 결정될 2월 5일 ‘수퍼 두퍼 화요일’(수퍼 화요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을 앞두고 선거 참모들은 ‘1월의 충격’을 야기할 만한 대형 재료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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