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도시생활>라벨르誌 컬럼니스트 이기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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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높은 울타리만이 둘러싸인 도시 한복판에서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집에 앉아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마음이 울적할 때는 바늘을 든다.예전에는 패치워크를 즐겨했지만 어쩐지 우리네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 같아 시들해져서 요새는 모시.생고사같은 천으로 조각보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이런 조각보는 부피도 작고 볼수록 정겹게 느껴 지기 때문이다. 일흔이 가깝도록 남편의 그늘밖에 나가보지 못하고 낯가림이심해 사람 사귀기가 어려웠던 겁쟁이인 나도 남편이라는 울타리가없어지고 나서야 사람은 누구나 혼자인 것을 알았다.
자식들과 손자.손녀들까지 있지만 그들이 내 인생 자체는 아니다.언제나 옆에 있어주리라 믿었던 남편조차도 나 자신이 될 수없었다는 절망감이 크면 클수록 보자기 숫자는 늘어만 갔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시작했던 조각보 만들기에 이내 재미가 붙었고,주위에서 「좋다좋다」해주니 공연히 우쭐해져 더 열심히 만들었다.내 손길도 더 바빠졌다.모시조각이 떨어져 안타까워 하는 나를 보고 딸애는 바느질집을 다니며 조각을 얻 어다 주고,며느리와 동생댁은 고맙게도 자신들의 거실을 내 솜씨로 꾸며주었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요즘도 나는 틈틈이 조각보를 만든다.시름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건네주고 싶어서다.바늘 한땀 옮길 때마다 이 조각보를 건네줄 자식을 위해숨은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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