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등단 14년만에 첫 창작집 여성작가 양순석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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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80년 『文藝中央』을 통해 등단한 여성작가 양순석(41)씨가14년만에 첫 창작집 『지워지지 않을 그 연둣빛』(문학동네刊)을 냈다.최근작인 『허공에 걸린 달』을 비롯, 등단 이후 드문드문 발표한 10편을 묶어 펴낸 이번 작품집에서 양씨는 일관된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비뚤어진 가족 내에서 서서히 일그러지는 여성의 삶.양씨의 소설은 공통적으로 불행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끝내 거기묶인 채 과거를 안타까워하는 여성 화자(話者)들이 등장한다.그여성화자는 모두 딸들로 그들은 어김없이 불화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가족을 벗어나 독립된 삶을 꿈꾼다.그리고 실제 성인이 되면서 집을 나가 독립된 삶을 살아간다.그러나 그들은 가족으로부터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공간적으로 벗어나 있어도 가족의 관계는계속돼 그들을 괴롭힌다.양씨의 소설은 그 여성화자들이 모성적인넉넉함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같은 경향 때문에 양씨의 소설은 80년대에는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정치적 이슈로 들끓던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양씨는 계속 가족의 공간에서 내면세계만 투시해왔기 때문이다.그러나 정치적인 쟁점이 사라지고 개인적인 일상사를 다루는 소 설이 유행하는 90년대 들어 양씨의 소설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그 가능성은 맹목성을 띤 전통적 모성과 직설적인 사회참여의어조를 갖는 페미니즘의 중간지점이다.
『오랫동안 인간 본성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 사랑과 미움이라는 생각을 해왔어요.사랑과 미움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오래 남아있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 아닌가 싶어요.제 소설속의 공간을가족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지요.여성화자를 등 장시킨 것은 제가 여성이고 필연적으로 여성적 삶의 조건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양씨는 철저하게 여성적 시각으로세상을 내다본다.그러나 그 시선은 모성을 부정하는 급진적인 여성주의의 시각이 아니다.양씨의 소설속 화자들은 여성의 시각으로성을 넘어선 인간을 보려 한다.그 시선은 여성주의의 사회성과 모성이 행복하 게 조화된 상태를 보여준다.그러나 양씨에게는 이시선을 내면에서 거두어 바깥세계로 돌려보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양씨는 『앞으로는 현실 시점과 가족 밖의 공간에서 사랑의 원형을 찾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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