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구태의연한 안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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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찬삼(李讚三)시카고 中央日報국장의 북한잠행 취재기사는 북한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보는 우리 정부 당국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않은 듯하다.中央日報는 최근 李국장과 북한전문가 그리고 북한에서 귀순한 사람들과의 대담을 계획,관계당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中央日報의 요청에 대한 정부 관계당국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특히 귀순자들을 관리하는 안기부측의 협조거부로 결국 귀순자들이 참여하는 대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안기부측이 밝힌 거절 이유는 李국장과 귀순자 대담을 허용함으로써 정부가 언론인들의 북한 비밀취재를 지원하는 듯한 인상을 줄 경우 다른 언론사들의 북한취재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안기부의 협조거부에는 행정편의주의적 요소가 짙게 느껴져 개운치 않다.국민들사이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봇물 터지듯하는것을 꺼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李국장의 북한 잠행취재는 과도기에 처한 북한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음에도 막상 북한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거의 구할 길이 없었던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신기원을 이룩한 쾌거다.
특히 전언으로만 듣던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등 생활고를 직접 눈으로 확인, 취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았으며 충격도 컸다. 中央日報는 李국장의 잠행취재결과를 그동안 10회로 나눠「동토(凍土)잠행」이란 제목으로 연재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에 李국장과 최근의 귀순자 좌담회를 마련해 보다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정리할 계획이었으나 당국의 비협조로 무산된 것이다. 李국장의 취재는 과거 북한관련 정보를 정부가 독점하는관행이 적지않은 폐단을 낳았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對북한 정책이 보다 포괄적이고 유연하게 전환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이같은 변화는 통일에 대한 국 민적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과 관련해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李국장과 귀순자들간의 대담에 반대하는 당국은 이같은 추세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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