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장애인 야학 ‘천막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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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개학한 ‘노들 장애인 야학’ 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천막 학교’에 들어가고 있다. 노들 장애인 야학은 정립협회의 퇴거요청으로 1993년 개교 이래 빌려 사용하던 정립회관에서 나와 이곳에 천막을 치고 개학했다. [사진=김태성 기자]

 2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영하 8도까지 내려간 이날은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공원 한편에 18㎡ 넓이의 비닐 천막 3동이 세워졌다. 천막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중증 장애인 37명과 교사 18명이 모였다. 올 첫 수업을 천막에서 시작하게 된 ‘노들장애인야학’ 학생과 교사들이다. 노들 야학을 졸업한 장애인 10여 명도 함께했다.

 “우리는 지금 갈 곳이 없지만, 공부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운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착잡한 표정으로 한동안 학생들을 바라보던 노들 야학 박경석 교장이 어렵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장애인 학생들의 입에선 “네”라는 힘찬 화답이 돌아왔다. 만학도 김명학(50·소아마비 지체1급)씨는 “어른이 되도록 초등학교도 못 나온 내가 이곳에 온 지 14년 만에 고교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며 “내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준 학교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노들 야학은 1993년 장애인 학생 5명을 상대로 처음 문을 열었다. 사회복지법인 한국소아마비협회의 배려로 서울 구의동 정립회관에 터를 잡았다. 무상으로 얻은 공간은 100㎡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야학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 장애인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15년간 이곳을 거쳐간 장애인은 모두 170명. 졸업생 중 초·중·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한 횟수는 276번이다. 현재 우리반·청솔반·불수레반·한소리반 등 초등학교 이전 과정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4개 반을 운영 중이다.

 학생들이 늘다 보니 공간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방 하나를 얇은 나무 벽으로 나눈 두 개의 교실을 돌려썼다. 이마저도 부족해 최근엔 교무실로 사용하던 방까지 교실로 사용하는 형편이었다.

 근근이 버텨오던 야학은 지난해 6월 정립회관 측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최종 요청을 받았다. ‘업무용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홍은전(29·여) 노들 야학 교사는 “지자체·시교육청의 지원비 6000여만원으론 운영비와 상근자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며 “새 공간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학 교사들이 나서 일일주점을 열고 모금운동을 폈지만 값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장애인 교육의 마지막 보루를 문닫을 수 없다는 마음에서 결국 찬바람 부는 공원 바닥에 천막교실을 마련한 것이다. 마로니에 공원은 이 학교 학생과 교사들이 주말마다 행인들을 상대로 학교를 지키기 위한 사진전시회와 서명운동을 벌였던 곳이었다.

 박 교장은 “우리나라 전체 학령기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데 전체 장애인의 45.2% 정도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정부가 장애 성인들을 위한 교육제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평택에서 노들 야학을 응원하러 온 에바다 특수학교(청각장애인 학교) 권오일(58) 교감은 “장애인에게 학교는 인간관계와 권리, 나아가 사회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며 “교육 공간 마련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송지혜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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