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원로배우 고설봉.장민호.김성옥등 뮤지컬 출연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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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젊은이들처럼 격렬한 춤은 못추겠지만 엉터리 뮤지컬 배우란 소린 안들어야죠.』 원로급 배우 김성원(57)씨는 요즘 탭댄스를 배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문예회관 연습실 마룻바닥이 닳도록 연습에 여념이 없는 이유는 오는 21일 개막될 뮤지컬 『나도 출세할수 있다』 때문.이 뮤지컬에서 사장 월리역을 맡게돼 뒤 늦게 춤 배우느라 고생이란 김씨는 그러면서도 『이제부턴뮤지컬 전문배우로 불러달라』는 주문을 잊지않는다.
이처럼 뒤늦게 춤과 노래를 배우느라 사서 고생문(?)에 들어선 배우는 비단 김씨뿐이 아니다.『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2월7~19일)로 뮤지컬 데뷔무대를갖는 김성옥(60)씨는 요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산다.뮤지컬에서 불러야 할 노래가 무려 세곡이나 되기 때문이다.하루종일 흥얼흥얼 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김씨의 모습에선 『세일즈맨의죽음』 『햄릿』등 명작무대의 타이틀롤을 단골로 맡아 60년대 한국연극의 독보적 존재로 불리던 대배우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어렵다. 그러나 김씨는 『춤 배우고 노래 익히는게 힘들긴 하지만끝없는 변신은 배우의 숙명』이라며 『새것을 익히는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역시 『나도 출세할 수 있다』에 캐스팅된 고설봉(81).강계식(77).장민호(71).이순재(61)씨등 이름만으로도 무게를느끼게 하는 원로배우들에서부터 이호재.전무송.박웅씨등 중견배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들중 이호재씨는 지난 연 말 소극장 뮤지컬 『별님들은 세상에 한사람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로 뮤지컬 데뷔무대를 가지면서 노래연습에 진을 뺐고,역시 지난해 첫 뮤지컬 무대에 섰던 전무송씨는 공연후 「못하는 노래도 나름대로 맛이 있다」는 주위얘기를 듣고는 『왠지 얼굴이 뜨겁더라』며 뮤지컬출연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원로.중견배우들이 대거 뮤지컬 나들이에 나선 것은 최근 불어닥친 뮤지컬 열기가 첫째 요인.가뜩이나 배우기근에 시달리는 연극계에 대형 공연이 많아지다 보니 원로급 배우들의 등장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연출자 정진수 씨는 『젊은배우들로만 구성된 뮤지컬은 아무래도 극의 중심을 잃기 쉽다』며『원로.중견 배우들의 출연은 극의 무게를 더해주고 극중 배역의실제 나이와도 맞아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또 최근의 대형 뮤지컬 공연들이 확실한 흥행카드를 보장받기 위해 대부분 탤런트나 가수.영화배우등 젊은 대중스타를 대거 동원하고 있으나 이들 만으로는 자칫 극이 가벼워질 것을 우려한 연출.제작자들이 원로.중견배우들의 출연을 종용하고 있는 것도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이를 두고 연극계 관계자들은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젊은 배우들에게 자극을 주고 귀감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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