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사후의북한을가다>6.金正日동지 통크고 독한 사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따스한 이불속에 잠들다가도 문득 깨어나 생각하는 것 내 이사랑 다 아는가 장군님 사랑.
내집 앞방에도 당신의 사랑 내집 뒷방에도 당신의 사랑 눈물이말라버린 늙은 이몸도 고마움에 울고 웁니다.
아,김정일 장군이시여 사랑의 화신이시여.」 북한주민 가정집 라디오에서 하루에도 수십번 들을 수 있는「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찬양하는 노래중 하나.그 중에서 거의 매시간마다 방송되는 노래가 있다.
「사나운 폭풍을 쳐몰아내고 신념을 안겨준 김정일 동지 세상이일백번 변한다 해도 인민은 믿는다 김정일 장군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고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아,우리의 김정일 장군」.
콧노래로 절로 나올만큼 너무 자주 나오는 이러한 노래들은「모도」「시낭송」등 하루 몇개 프로를 제외하고 계속 내보내고 있었다. 북한 주민의 김정일관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30년간 아버지 사업맡아 젊음을 다보냈다.그런 아들,세상에어디 있는가.효심이 지극하다.그래서 아직도 주석 취임식을 마다하고 있다(40대평양 주부).』 『뱃심 있고 통이 클 뿐만 아니라 무섭고 독한 사람이다.한번 계획하면 해내고 죽인다면 죽인다(50대 평양 관리).』 『판단이 빠르고 결심이 정확하며 뱃심이 크다(40대 평양 고급장교).』 『어릴 때 빨랑거리며(까불며)장난질이 심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선전책자보니 반대로 적힌 점도 있더라(60대 농촌 남성).』 『그이는 우리의 절대적지도자다.수령님 뒤를 이을 분은 그이 외에 누가 있겠는가(30대 농촌 청년).』 『수령님 같은 위인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누가 영도하든 상관없다.잘 먹게만 해주면 그만이다(50대 농촌부인).』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절대적인 인물로는 생각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평양 사람들과 내지 주민의 김정일관은 상당한 차이점이 있었다. 김정일의 평양건설 업적을 높이 평가해 좋은 점수를 주는 수도(首都)시민에 비해 농어촌등 일반 내지 주민은 갈수록 심해지는 식량난에 허덕이다 지쳐 통치자에 관심 둘 여유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전체 주민의 한가지 공통된 점은 이같이 기아선상에 헤매게된 이유가 김일성 부자의 잘못된 통치에 있다고는 보지않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호시탐탐 재침기회를 노리는「미국놈」들과 「남조선 괴뢰도당」을 상대해서 전쟁준비를 하다보니 허리띠를 졸라맬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진우.김정일에 치명적인 병력이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해도 대수롭게 생각지 않고 있는 듯 했다.어쩌면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식의 발로일지 모르겠다.
온 낮과 밤을 통해 김정일 찬양 방송을 해댄다 해도 주민은 덤덤한 기분으로 듣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들의 내면에는 변화를 기다리는 눈치도 엿볼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김정일 동지를 향해 축전과 선물을 보냈다」는「톱뉴스」에 별관심을 보이지 않다가도「조.미회담」「북.남문제」관련 보도에는 귀를 가까이 대고 라디오.TV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은 대단했 다.
『클린턴도 애도를 표한 마당에「령삼이」는 초상집을 향해 총을갖다 댔다』고 말하는가 하면『수령님이 과거를 용서하고 만나주겠다고 했으면 서거소식을 듣고 통곡을 해야지 계엄령을 선포하고 조문을 막는 법이 있는가』고 흥분하는 등 金대통령 을 향한 독설을 평양.지방도시.농촌 할 것 없이 듣기에도 거북할 만큼 지독하게 내뱉고 있었다.
심지어『「김일성 사망」을 이용해 전쟁을 기도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평양에서 만난 한 고급장교는 성서에 나오는 가롯유다에 비유하며『그동안 우리 인민군 전사들이 지도자 동지의 명령에 충실하여절대복종하는 생활을 해 왔지만 사과를 받지않고 앞으로 그를 만나 대화를 하신다면 우리 인민군 전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이같은 주민의 생각은 북한당국의 계산된 정책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됐다.
그동안「철천지 원쑤」「승냥이」「대를 이어 까부술 대방(상대)」이란 구호로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온 북한당국은 미국과의관계개선을 추진하면서 그 적개심을 엉뚱한 곳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것 같았다.아울러 북한방송은 어느날 성 수대교 붕괴사건과 육교붕괴사고등을 주제로 기자방담을 하며『조.미회담에서 따돌림을 당한 괴뢰들이 잦은 사고로 더욱 곤경에 빠지고 있다』며『이같은 사고는 공사비의 절반을 훔쳐간 정치꾼들 탓』이라고 억지를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