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그 어깨에만 짐을 지우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금 모두의 눈은 당선자에게 쏠려 있다. 모든 것이 그 혼자 몸에 달린 듯 얘기한다. 이런 기대감이 당선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기쁜 마음은 잠시고 걱정이 태산”이라고 고백했다.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대통령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이 말한다. 경제가 당선자 혼자 하기에 달렸을까. 대통령이 일을 마음대로 하려면 그만큼 권력은 강해져야 한다. 정부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원하고, 자율을 원하고, 규제를 풀기를 원한다. 모순이다. 경제는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작지만 활력 있어야 하고, 시장의 자유는 있지만 방종은 없어야 한다.  
 
어느 모임에서 들은 강남의 한 가정 얘기다. ‘이명박 당선’이라는 방송 자막이 나오자 그 집 큰아들이 “재건축 만세!”라며 박수를 쳤다나…. 어느 미장원 손님은 “이명박이 세금 깎아 주지 않기만 해 봐라…”했단다. 비합리적인 세금은 고쳐야 하고 낡은 아파트는 재건축해야 한다. 그러나 재건축으로 몇억씩 공돈 만들어 주고, 아파트 몇 채씩 가진 사람들 살려 주려고 대통령 된 것은 아니다. 재벌들에게 돈 많이 벌게 하여 특권을 영원히 상속시켜 주기 위해서도 물론 아니다. 규제를 푼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은 당선자가 경제를 살리는 비책이나,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니 한 사람의 어깨에 경제의 모든 짐을 얹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는 그렇게 일어서지 않았다. 경제가 잘되려면 다른 문제가 먼저 제대로 돼야 한다. 영국은 19세기에 빅토리아 시대라는 황금기를 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영국의 무역선이 활동을 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들었다. 그런 경제를 만들기에 앞서 영국에서는 지식인들의 각성운동을 시작으로 전 국민을 상대로 윤리회복 운동(Reformation Of Manners)이 일어났다. 이 운동이 뿌리가 돼 1833년 영국은 노예해방법을 선포했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는 진지했고 기강이 있었다. 당시 영국 상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을 이은 미국 역시, 자본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청교도 윤리가 있었다. 사업가들은 개인의 향락과 사치를 위해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사업가는 근면하고 정직하며 절제 있는 사람들이었다. 20세기 초반 미국은 자본주의를 신봉하면서도 금욕적인 성품을 가진 기업가들 덕분에 경제대국을 이루었다.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의 변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 그래서 좋은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게 됐다. 그러나 사람은 변하지 않고 정책만으로 사회가 좋아질 수 없다. 사람과 정책, 이 둘을 수렴할 수 있는 것이 리더들의, 지도층의 변화일 것이다. 리더들이 정책을 만드니까 말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이 아니라 부자·지식인·권력자들이 먼저 바뀌면 사회는 변하게 돼 있다. 국회의원 공천 문제로 다시 싸움이 시작된 듯하다. 공천이 국민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뉴라이트니 하면서 이런저런 캠페인을 벌였던 사람들도 권부를 기웃거리고 있다. 윗물에 변화가 없다는 방증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 나라는 다시 살아났다. 2008년 새 아침, 그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이며, 지켜야 할 윤리가 무엇인가. 이제는 당선자를 보지 말고 각자 자신을 돌아보자.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