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태안의 기적'에서 희망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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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태안반도를 찾은 자원봉사자 수가 어제로 50만 명을 넘어섰다. 현지에 내려진 대설주의보와 파랑경보,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인 어제도 8000여 명이 태안반도를 찾았다. 한 해를 마감하는 종무식과 새해를 시작하는 시무식을 아예 태안반도에서 기름 방제 작업으로 대신하는 기업도 많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이 모여 이루어내고 있는 ‘태안반도의 기적’을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갖게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가 끝이 보이지 않는 인간띠를 형성하면서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 20여 일 만에 태안반도는 빠르게 예전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거쳐간 해변마다 검은 모래가 하얗게 바뀌고 있고, 기름때에 절었던 자갈과 바위도 본래 색깔을 되찾고 있다. 새까만 기름띠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게와 고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졸지에 보금자리를 잃었던 철새들도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 현장을 둘러본 유엔과 유럽위원회(EC) 전문가팀은 오염 지역의 생태계 복원 전망이 밝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사고를 겪었던 일본의 경우에도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방제 작업에 큰 역할을 했지만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된다. 1997년 일본 후쿠이현 미쿠니 마을의 기름 유출 사고 당시 3개월 동안 3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렸지만 우리는 불과 3주 만에 이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렸다.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이처럼 빠르게 방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세계 해양 오염 사고 사상 유례가 없다고 한다. 환경기자클럽이 태안반도를 찾은 자원봉사자들을 ‘올해의 환경인’으로 선정하고, 일부 언론사들이 이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당연하다.

국난 극복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자발적 정성으로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온 이들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힘이고, 잠재력이며 가능성이다. 절망의 검은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바꿔놓고 있는 이런 국민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희망차게 새해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