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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는 쓰러지지 않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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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12면

눈물이 고여 있거나 멍한 눈동자를 한 여인들 사이로 노래가 흐른다. “하늘은 우리 머리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천국의 일곱 층은 우리 가슴을 찢어 놓네.” 샘물이 눈물로 흐르고 낙원의 꽃마저 고개를 돌린다고 노래하는 이들은 보스니아 내전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차라리 어둠으로 덮어두고 싶은 기억을 지니게 된 여인들이다.

2006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그르바비차’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야 끝난 보스니아 내전. 그러나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10년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쟁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고 깊어지기만 하여 한 여인을 울게 만들고 있다. 보스니아의 신인 여성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가 연출한 ‘그르바비차’는 그 여인 에스마와 어린 딸 사라의 이야기다.

고문과 강간의 공간, 그르바비차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의 그르바비차 구역에 살고 있는 에스마(미르자나 카라노비크)는 밤새워 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혼자 힘으로 딸 사라(루나 미조빅)를 키운다. 에스마는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강간당해 사라를 낳았지만, 딸에게는 아버지가 명예로운 군인으로 전사했다고 거짓말을 해 왔다.

사라가 수학여행을 가게 되면서 비밀은 위기를 맞는다. 수학여행 비용 200유로는 가난한 에스마가 감당하기 힘든 액수. 사라는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증명서를 내면 수학여행 비용을 면제받을 수 있다면서 엄마에게 집요하게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조른다. 거기엔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 사라가 좋아하기 시작한 동급생 사미르의 아버지도 내전에서 전사했기 때문이다.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 내전 중에 세르비아 군대가 보스니아계 주민들을 수용하는 캠프를 설치했던 구역이다. 이 캠프에서 남자들은 고문당했고 여자들은 강간당했다. 에스마는 아이를 떼지 못해 배가 솟아오른 다음에도 군인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자신을 강간했다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낸다. 1992년 보스니아에서는 2만 명의 여인이 그런 식으로 모욕감과 상처를 주어 적을 패배시키려는 인종 청소의 한 방법으로 조직적으로 강간당했다.

사라예보 최전선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 살았던 즈바니치 감독은 그해 이후 강박처럼 강간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읽었지만 그 의미를 깨달은 것은 아이를 낳은 다음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증오로 잉태된 아이를 가진 여인에게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 것인가? 그것이 내가 ‘그르바비차’로부터 얻고 싶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즈바니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고 유럽 4개국으로부터 지원을 얻어 영화를 완성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숱한 전쟁이 그러하듯 보스니아 내전도 2004년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크로아티아 영화 ‘목격자들’을 비롯해 데니스 퀘이드 주연의 ‘세이비어’와 마이클 윈터바텀의 ‘웰컴 투 사라예보’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영화들이 전쟁 자체를 담고자 했던 데 비해 ‘그르바비차’는 전쟁 이후를 견뎌야 하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야만 하는 이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그르바비차는 지옥 같았던 과거가 아직도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그럼에도 삶의 터전일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르바비차 근처에 사는 즈바니치 감독은 “그르바비차를 걷다 보면 사회주의 체제가 남긴 건물들과 주민들, 가게들, 아이들과 강아지들을 보게 될 거다. 그러나 침묵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거대한 고통이 남아 있는 장소에 있을 때면 느끼게 되는 이상한 감정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그르바비차’는 할퀴듯이 서로의 마음을 긁고 지나가면서도 은근한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한때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젊은 여인과 전쟁을 모르는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그르바비차’에서 무엇보다 절박한 것은 사라를 여행 보낼 경비 200유로다.

강간 피해자인 여성들에게 지급되는 몇 유로, 공장 노동자들이 조금씩 모아주는 지폐 몇 장, 클럽 주인이 모욕하듯 내던지는 가불 월급. ‘그르바비차’는 오직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애쓰는 에스마의 여정에 자연스러운 길목처럼 험난한 삶의 조건들을 하나씩 얹어간다. 연정을 느낀 남자의 키스에 멈칫할 수밖에 없는 에스마의 흉터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에스마는 기어이 200유로를 만들고,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여행을 떠나는 사라를 배웅한다. 마지막 순간, 모녀는 버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손을 흔들고, 사라예보를 연인처럼 다정하게 대하는 노래 ‘Sarajevo, My Love’가 버스 안에 울려퍼진다.

다만 살아남기 위하여
그러므로 ‘그르바비차’는 사라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고 그에게 복수하려 들지 않으며 구태여 용서나 구원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보다 급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 자신 또한 야만에 휩쓸렸을 뿐일지도 모르는 세르비아 군인은 정자만을 남겨놓은 채 에스마와 사라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에스마는 돈을 벌어 사라를 키우고 자신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남자에게 머뭇거리며 손을 내민다.

사라는 어린 사랑을 시작한다. 보스니아 국내에 없는 35㎜ 카메라를 빌려 어렵게 모녀의 이야기를 완성한 즈바니치는 “나는 에스마가 용서에 대해서도 복수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사라는 희생자이면서 범죄를 환기시키는 아이이기도 하다. 우리의 미래는 그 두 가지 요소 모두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진정 살아 있는 이들이 과거에 포박당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삶은 언제나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의 등을 떠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산 자들은 스스로 걸음을 떼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모녀의 꿋꿋한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그르바비차’는 그 경이의 순간을 포착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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