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이젠 맞는 게 두려운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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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제는 피 냄새가 싫다. 내일이 두렵다.”

 “끝내고 싶다. 권투를…. 맞는 게 두렵다.”

 25일 경기 직후 뇌출혈로 쓰러져 나흘째 사경을 헤매는 프로복서 최요삼(33·숭민체육관)의 일기(사진)가 28일 공개됐다. 다이어리 한 권 분량의 일기는 최요삼이 지난해 여름부터 25일 경기 직전까지 틈틈이 썼던 것이다. 페이지마다 마음속의 상처, 링에 오르기 전 그가 느꼈던 공포와 고뇌,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 등 가슴 뭉클한 내용이 담겨 있다.

 최요삼의 일기는 지난해 7월 시작한다. 2005년 6월 링을 떠났다가 지난해 12월 복귀전을 치르기 반 년쯤 전이다. 일기는 1999년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이 된 직후 주변 사람들로부터 얻은 상처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한다. 당시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여파와 식어 버린 복싱 열기로 방어전 일정조차 잡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인간적인 배신이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너무나 생각난다. 권투도 나를 버릴까.”

 배신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이어졌다. 2002년 4차 방어전에서 세계 타이틀을 뺏긴 뒤 2년간 세 차례나 정상 복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최요삼은 또다시 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또 패장이 될 것인가.”

 “집중이 되질 않는다. 다 끝내고 싶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잘못을 했나 보다.”

 “한계를 느끼고 있다. 너무나 오래 쉬었다…. 자신이 없어진다. 내일이 두렵다.”

 “오늘은 잠이 오질 않는다. 감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외로움이 너무나 무섭다. 너무나. 더 외로워야 할까.”

 30대 중반이 되도록 인생의 반려자를 찾지 못한 최요삼은 이런 고통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다. 결국 혼자서 스스로를 질책하고 반성하며 극복해야만 했다.

 “냉정하지 못했다. 한 번 더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자.”

 “반드시 할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를 도울 것이다. 가자, 가자, 가자. 저 외로운 길 내 꿈이 있는 곳에 가자, 요삼아.”

 지난해 8월 몽골 전지훈련을 갔을 때 적어둔 그의 일기 한쪽에는 소박한 꿈과 소망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챔피언 벨트가 아니었다. 부와 명예는 더더욱 아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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