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항공사 마일리지 유효기간 왜 두기로 했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틴틴 여러분, 요즘은 어릴 때부터 해외 여행이나 연수 때문에 여객기 탈 일이 더러 생기기도 하지요?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적어도 동행한 어른들이 공항 카운터에서 항공 마일리지 적립하시는 걸 본 적이 있을 거예요. 항공 마일리지(mileage)는 여객기 주행 거리를 누적해 해당 승객에게 공짜 항공권이나 좌석 등급 업그레이드 같은 혜택을 주는 제도예요. 그럼으로써 손님을 더 끌려는 거지요. 은행에 저축한 예금을 원할 때 찾아 쓰듯이 마일리지도 필요한 만큼 꺼내 쓸 수 있어요. 승객들도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노력하지요. 마일리지를 많이, 빨리 쌓기 위해 단골 항공사를 정해 그 여객기만 탄다든지, 특정 항공사와 제휴한 신용카드를 집중적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일리지 제도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어요.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최근 마일리지에 유효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한 거지요. 종전엔 유효기간이 없었어요. 오래전에 비행기를 타서 쌓은 마일리지를 향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었지요. 이제 대한항공에서 내년 7월 이후 쌓는 마일리지는 적립한 시점부터 5년 동안 다 소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효가 되지요. 내년 6월 30일 이전에 적립한 마일리지는 지금처럼 평생 쓸 수 있고요. 일종의 계도 기간입니다. 아시아나항공도 마일리지에 유효기간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불만을 토로하는 승객들도 나오고 있어요. 그러면 항공사가 승객 마일리지에 유효기간을 도입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마일리지 너무 쌓이면 쓰기 힘들어져=마일리지에 유효 기간이 없다 보니 승객들은 보너스 사용을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중에 금전적 여유가 없을 때 쓰지’ 하는 심정도 작용합니다. 이로 인해 쌓아놓고 쓰지 않는 마일리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요. 문제는 마일리지를 쓰기 원하는 구간이나 계절이 편중된다는 겁니다. 마일리지 회원들은 대부분 국내의 경우 서울~제주, 해외의 경우 미주·유럽 등 장거리 노선의 공짜 항공권을 희망한다고 해요. 또 휴가철인 7월 말에서 8월 초를 선호하고요. 마일리지를 이용한 공짜 좌석은 한정돼 있으니 “마일리지 좌석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마일리지 좌석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요? 항공사도 이익을 남기려면 무작정 보너스 항공권으로 좌석을 채울 수는 없겠죠.
 
여객기 탑승률은 보통 70~80%입니다. 비수기에는 빈 좌석이 꽤 있다는 얘깁니다. 항공사로서는 이 자리를 마일리지를 활용한 보너스 항공권이 채워 줬으면 합니다. 여객기 좌석은 지금 안 팔리면 놔뒀다가 나중에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탑승률이 50%든 만석이든 비행기가 뜨면 연료·인건비 등 들어갈 건 다 들어갑니다. 보너스 항공권으로 자리를 채워 주면 빈 자리 운항을 막고 마일리지도 소진되고 항공사 입장에선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그래서 5년이라는 유효 기간을 두면 승객들이 좀 더 보너스 항공권을 쓰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거죠. 대한항공은 지금처럼 마일리지 사용이 계속해서 부진하면, 10년 뒤에는 마일리지로 인한 공짜 항공권 수요가 전체 좌석의 10%에 이를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그때 가서 마일리지 좌석의 공급이 달리면 고객 불만이 폭발할 것은 물론이고, 회사의 경영수지가 악화할 것이 뻔하다는 이야깁니다. 마일리지 회원이 앞으로 마일리지를 쓸 것에 대비해 회계상 적립해 두는 마일리지 충당금이 급속도로 불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대한항공의 경우 2003년 773억원에서 최근 1886억원으로, 아시아나항공은 172억원에서 595억원으로 급증했어요. 항공사 입장에서는 고객들이 마일리지를 그때그때 써 주면 ‘경영의 불확실성’이라는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죠. 
 
◆소비자 계도가 관건=참고로, 세계 주요 항공사 중에는 마일리지에 유효기간을 두는 곳이 많습니다. 짧게는 1년6개월, 길게는 3년까지입니다. 미국의 대형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과 콘티넨털항공은 1년6개월, 델타항공은 2년, 노스웨스트항공은 3년을 마일리지 유효기간으로 정했습니다. 에어프랑스·루프트한자항공·싱가포르항공·캐세이퍼시픽항공도 유효기간이 3년이지요.
 
대한항공이 유효기간을 도입하기로 하자 불만을 토로하는 승객도 적잖습니다. 특히 “1년에 한두 번 비행기를 타서 5년 안에 공짜 항공권을 얻을 수 있는 마일리지를 쌓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마일을 차곡차곡 모아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장거리 공짜 항공권을 얻으려는 꿈이 멀어진다는 겁니다. 또 마일리지 사용에 제한이 많다는 불만도 나옵니다. 휴가철에 마일리지 항공권을 얻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자는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레스토랑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할 때나 자선단체에 기부할 때도 마일리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한 외국 항공업계의 서비스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시행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고객들이 못마땅해합니다.
 
대한항공도 고객을 달랠 고육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해요. 외국 항공사에는 드문 ‘가족 마일리지 합산 보너스 제도’를 활용하고, 미리 여행 계획을 짜서 일찌감치 마일리지 좌석을 신청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조언도 합니다. 이를 위해 인터넷에 1년치 노선·시간대별 마일리지 좌석 현황을 조회해 바로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